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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필름은 올해부터 집구석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박배일 감독의 <그녀와 나의 전쟁>, 문창현 감독의 <집구석 프로젝트1>(제목이 정해지지 않아서)!!!
가부장제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그에따른 갈등, 4대강 사업으로 인해 가족이 함께 했던 공간이 사라지면서 겪는 사건을 바탕으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는 작품이 나올 것 같습니다.
작품을 찍기 위해 일단은~~ 가족의 탄생과 구성 요소를 알아봐야겠지요.
그래서 세미나를 했습니다. 문 대표와 일개 감독, 촬영 감독과 일년 동안 인문학을 파겠다던 예비 다큐멘터리 감독까지
네명이 안돌아가는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책읽고 토론을 했습니다.
이 글은 예비 다큐멘터리 감독 정슬아님께서 세미나를 하고 느낀점을 오지필름의 강요에 의해 적은 글입니다.
왠지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순진한 아이를 나쁘게 물들이는 느낌이 후욱 들지만, 물들이려면 제대로 들여야겠지요~ㅎ
기획중인 감독의 집구석 프로젝트에 맞춰 [여성학]이라는 큰 주제로 두 번에 걸쳐 독서 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생전 처음 해보는 토론 경험이었고 한번도 제대로 관심가져보지 못한 인문학이라는 분야에 발을 살짝 내딛어보았지요.
현대 사회의 가족의 모습이 왜 이렇게 변해왔고 특히나 그 속에서 엄마이자 며느리이자 아내로서 ‘여성’의 역할을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여성의 당연한 본성으로 여겼던 ‘모성애’가 그렇게 당연시 넘겨야 될 것이 아닌, 사회에서 일하는 남성에 맞추어 어쩌면 집안에서 강제적(?)으로 생겨났을지도 모르는 것이라는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제가 보았던 엄마 혹은 할머니의 모습이 단순히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더군요. 그 뒤에 펼쳐지는 사회적 배경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구석구석 손뻗어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그저 아~ 하고 넘어갈것이 아니라 나부터가 인식을 바꾸고 새롭게 봐야할 것이라고 다짐해보았습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제가 그동안 교육받아왔던 내용과 방식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부터 정리하고 이야기하고 나와 연관시켜보아야 하는지 아직도 어렵습니다. 아직 두 번밖에 하지 못한 세미나이지만 매번 끝날 때마다 내 스스로가 모자라다는 것만 잔뜩 느끼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주위를 둘러보는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게 좋은거다 맘 편히 살아왔던 제 삶의 방식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깨달아 가는 많은 사회문제들을 활자로만 읽혀지는 정보로 끝낼 것이 아니라 내 머리부터 시선부터 바꾸면 조금씩 나아지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되면 저 역시 누군가에게 작은 영향이라도 주지 않을까요? 그리고 후에 그런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저의 작품도 아주 잠시 꿈꿔보았습니다.
다음에 있을 세 번째 세미나도 기대됩니다. 그땐 제가 좀 더 나아져있길 기대해보면서 ;-)
정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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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배일 일개 감독이 부산 민예총 웹진에 칼럼을 쓰기로 했습니다.
안되는 글빨 올려보려고 정기적으로 글쓰기로 맘 먹었다네요.
괌심있게 읽어봐주시고, 상처 받지 않을 정도의 비판 해주세요~
(일개 감독 소심한 거 다들 아시죠~)
부산 민예총 웹진 떠들썩: http://talk.openart.or.kr
나의 다큐멘터리와 정치
결국 품고 있던 베개를 집어 던진다. 신경질적으로 자리를 차고 일어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사방에 날려댄다. 같은 무늬가 반복되는 벽에 이마를 박는다. 아무 죄 없는 리모컨을 땅바닥에 팽겨 치며 TV를 끈다. 요산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해 통풍을 앓고 있는 난, 곡주를 먹으면 극도의 고통이 따라옴에도 불구하고 집에 남아있던 맥주를 깐다.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맥주도 부글부글 끓는 내 마음을 식힐 수 없다.
'아! 결국 이렇게 지는 건가? 앞으로의 4년마저도 짙은 암흑으로 빨려들어가는 건가!'
2012년 4월 12일 새벽, 난 다시 컴퓨터를 켜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 총선 결과에 하염없이 한숨만 쉬었다.
2006년 겨울 난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다. 10편 이상의 단편영화를 연출했지만 봐주는 사람도, 지지해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심은하도 영화계에서 은퇴한 마당에 미련 없다고 자위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대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에 카메라를 들고, 옆집 노부부의 일상을 따라다녔다. 3개월의 기획, 촬영, 편집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 이면엔 가난이 있었다. 그 속엔 추위가 있었고, 병든 삶이 있었고, 눈물이 있었고, 좌절이 있었다. 그 속에 없는 유일한 한가지, '희망'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난 내가 카메라를 놓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다. 나의 카메라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가난과 추위와 병든 삶과 눈물과 좌절을 알리고, 사람들과 함께 희망을 찾는 매개체가 된다면, 내가 만드는 작품이 그런 역할을 한다면 조금 더 카메라를 들어도 되지 안을까!! 이후 난 노동자, 여성, 장애인의 삶을 따라다니며 지금까지 독립다큐멘터리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독립다큐멘터리감독으로 살아온 이후 네 번의 큰 선거가 있었다.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까지... 단 한번도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되는 꼴을 보지 못했다. 2007년 기업 CEO에게 대한민국을 인수시키고, 2008년 그의 간부들에게 대한민국의 요직을 맡긴 후부터 난 눈코뜰새 없었다.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며 미친 쇠고기를 정부에게 양보하라고 외칠 때, 언론장악을 위해 동의대 신태섭 교수를 KBS 이사직에서 자르려고 할 때, 4대강 삽질로 삼락둔치 농민들이 일터에서 쫓겨 나갈 때,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크레인에 올라가고 그녀를 살리겠다고 희망버스가 달릴 때, 쌍차해고노동자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을 때... 분노에 휩싸여 카메라를 들었고, 어떻게 알릴까 고민했다. 나를 포함한 독립영화인들은 대한민국의 CEO가 저지른 일들을 수습하기 바빴다. 수습되지 않길 바라며 사업을 추진해왔던 CEO와 간부들은 우리가 눈의 가시였을게다. 이윽고 그들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다.
최초의 독립영화라 불리는 '상계동 올림픽(연출: 김동원)'은 88서울올림픽을 위해 도시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달동네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쫓겨나게 돼버린 세입자들의 투쟁을 다룬 작품이다. 당시 언론은 88올림픽의 성공을 위한 여론몰이에만 열을 올렸지, 재개발 세입자들의 아픔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후 독립영화는 기성 언론이 관심 가지지 않거나 애써 외면하는 곳에 들어가, 그곳에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올곧이 전하는 것에 힘을 쏟았다. 세상이 조금씩 바뀌면서 독립영화의 필요성이 높아졌고, 영화 정책에서도 독립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사업들이 생겨났다. '독립영화 제작지원 사업', '미디어센터 사업',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 상영사업'등 기획에서 제작, 배급까지 전반적으로 독립영화를 지원하는 사업이 생겨났다. 독립영화가 발전함에 힘입어 한국 영화의 양과 질이 높아졌다.
대한민국을 철저히 사유화 하려했던 이들은 독립영화를 좌파 의식을 고양시키는 매체로 생각했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독립영화의 첫 디딤돌을 마련해주는 미디액트 사업권을 회수했다. 미디액트는 시민들이 미디어에 접근 할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생산하고, 퍼블릭액세스와 독립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장비 지원 및 교육하는 곳이다. 미디액트 사업권 회수를 시작으로 전국의 미디어센터 예산을 줄이고, 사업의 방향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미디어센터 사업의 방향을 흐려 놓는 동시에 진행한 것이 독립영화 전용관지원 사업을 없는 일이었다.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사업이 생기긴 했지만 작년 'G20'이 있을 때 'G20영화제'를 기획하는 등 사업의 목적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독립영화제작 지원금 역시 매년 줄어들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제작 여건이 힘든 독립영화를 더욱더 위축 시키고 있다. 독립영화가 사라진다면 소외된 이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문제를 부각 시키려는 노력이 줄어들 것이다. 독립영화가 사라진다면 왜곡되어 드러나 있는 세상의 이면을 더욱더 알기 힘들 것이다. 독립영화가 사라진다면 대중들 입맛에 들어맞는 스토리와 미학만 살아남아 영화 발전에 큰 저해가 될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정치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단 한사람이라도 억울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삶을 깊숙이 들여다봐야한다. 그리고 다함께 웃을 수 있도록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변화 시키는 것이 정치하는 것이다.
독립다큐멘터리를 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단 한사람의 억울한 눈물이 없도록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을 진실하게 담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함께 변화를 꽤 할 수 있게끔 매개체가 되는 것이 독립다큐멘터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정치를 하고 있다.
맥주를 마신 후 멍하니 천장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묻고 물었다.
'착각하고 있었구나!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어!'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말만 듣고, 분위기에 이끌려 오해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곳에 투표도장을 찍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결론이 나니 어리석은 내가 원망스럽고, 꼼꼼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럽다.
두 주먹 불끈 쥐고 다짐한다. 더 깊이 들여다보자! 더 넓게 이해하자! 더 많이 뛰자!
2012년 4월 12일 오후, 나와 내 다큐멘터리 그리고 나의 정치는 반성과 후회와 다짐으로 한발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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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마음안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인디다큐페스티벌, 1년 만에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무척 설레었는데요.
풀리지 않는 작품편집을 핑계로 많이 보고 오자! 하며 부산을 떴습니다.
- 3월22일부터 25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떠난 인디다큐페스티발!!
첫 날부터 뭐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상영하는 영화는 다 보자였습니다.
도착하고 바로 찾아본 영화는 ‘옥탑방열기’ 봄 날씨처럼 젊은 감독 2명의 센스 있는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을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데, 그냥 이 작품은 DMZ다큐페스트 때 시선이 갔던 작품이 상영되는 거여서 꼭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부럽기도 했고요. 왜? 장편을 만들어냈으니까... 제 또래 감독들을 보면 사실 맨날 드는 생각입니다. 부러우면 지는건데... 저는 부럽더라고요~
처음 본 작품부터 제 작품의 편집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저한테는 아주 좋은 작용이었죠!
그렇게 첫날 6편의 영화(장편3, 단편3)를 내리보고 동생 집으로 향했습니다.
1년 동안 생활했던 곳이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1년을 살았지...
부산에 남겨둔 작품 때문에 온 신경은 부산으로 쏠려있었습니다.
둘째 날은 완전 하루 종일 눈물바다였습니다.
용산특별전 섹션으로 장호경감독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끝나지 않은 이야기’부터 제 눈에 물을 2리터 쏟게 하더니 태준식감독의 어머니는 절정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눈물 쏟고 극장에 안 좋은 공기 마시고 했더니 완전 힘들었습니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정말 꼭 봐야할 영화 같습니다.
용산사건이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아주 근황의 이야기까지 속속히 담아준 작품이었는데요.
보고 또 봐도 아깝지 않은 영화였어요, 아주 길고 디테일한 감성뉴스를 보는 느낌이었는데...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게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오늘 제가 고용센터에서 적성검사를 했는데... 애국심이 거의 %로 따졌을 때 50% 미만이더라구요.
아마 다 이런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문득 박배일감독의 애국심이 궁금해서 물었더니 ‘나는 거의 제론데? 하네요...’
그리고 태준식 감독의 '어머니' 제작년 서울 살 때 동대문시장을 자주갔는데 옷사러도 가고, 그냥 지나치기도 하고... 그럴때 마다 평화시장이라는 간판이 크게 눈에 띄었는데 사실 역사적 사실이나 이런 것들은 상식수준만 알고 있는 저로는 이소선어머니의 삶을 잘 몰랐습니다. '어머니' 영화를 보고서야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이 조금 확장되었는데요. 4월 5일 개봉했는데 꼭 볼 수 있는 분들은 보셨으면 하는 영화입니다.
▶ 태준식감독 GV 현장
그리고 마지막 타임 투올드힙합키드, 이 영화 관객상 받았거든요.
좀 길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힙합을 좋아하는 저로썬 상당히 재미있는 다큐였어요,
감독님이랑 좀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는 없었답니다. 이 영화는 대학시절 랩퍼를 꿈꿨던 감독이 이제는 카메라를 들고 영화의 꿈을 키우는 과정에서 예전에 함께 했던 형들과, 자신을 담은 영화입니다. 자신을 담았다는 측면에서 저는 높은 점수를 줬는데요. 일단 제가 하고 있는 작품에 좀 영향을 미쳤다고나 할까?
셋째 날은 아침부터 열심히 또 작품 봤습니다.
이날 섹션은 전편을 다봤는데 개막작이 있었어요 아무도 꾸지 않은 꿈이라고,
구미공단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15명을 인터뷰한 작품인데요.
구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저는 공단의 모습이 익숙했는데요. 그렇게 마음속으로 가까운 곳이라 여겼던 곳에서 노동자들이 있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눈에서 멀어진 이유인지 아직 감수성이 풍부하지 못한 건지... 영화를 보면서 내 친구도 떠올랐고, 학교다니면서 무심하게 지나쳤던 그 공간과, 얼굴모를 사람들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부산에도 많은 노동자 이야기들이 곳곳에 있는데 ,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 영화였습니다.
부산으로 오는 마지막 날까지 영화를 봤습니다.
보러갔으니까 보고 온 거죠.
‘공항으로 가고 있다. ’ ‘조울 –그리다 춤추다’ 두 작품이 기억에 남는데요. 사실 제가 좋아하는 다큐멘터리는 아니었는데요. 재미는 없었거든요. 두 작품 다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습니다. 공항으로.. 이 작품은 30대인 감독이 친구들의 이야기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에 대해 묻는 작품 같았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가꾸는 친구, 번듯한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친구, 영화 만드는 감독자신 1년 동안 그들의 고민에 대해 풀어낸 이 다큐는 마치 지금 제가 하는 고민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20대의 선택. 이게... 사실 다를 줄 알았는데 같은 것 같더라고요.
나도 30대가 되면 또 이런 선택의 고민을 분명하고 있을 것이라는... 좀 서글픈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조울.. 이 작품 감독 실제이야기입니다. 조울증을 앓던 감독자신이 그림과 , 춤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영화를 만들게 된 이야기입니다. 지루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감독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건 직접 겪지 않으면 모를 일이지만 작품을 통해서 아.. ‘조울’이라는 게.. 이런 건가? 하면서 조울증에 대해 새삼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습니다. 감독님과 대화는 못 나눴지만 분명 영화만큼 우울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4일간의 긴 여정을 통해 저만의 다큐멘터리 축제를 만끽했습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작품 완성할 일만 남았겠지요.
좀 늦은감이 있지만 또 이렇게 봤던 작품들에 대해 깊진 않지만 짤막한 정리를 해보니 다큐멘터리의 매력이라는 것... 뒤늦게 곱씹어도 충분히 그 작품이 주는 여운들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 정말 좋습니다.
그냥 주절주절 안하고 다음 글은, 제발
제 작품에 대해 끄적이는... 끄적이도록 하겠습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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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 34분 / DV / 16:9
기획/제작 오지필름
연출 한동혁
촬영 한동혁 조성주 박배일
편집 한동혁 박배일
기획의도
대한민국에서 '자퇴'란 어떤 의미일까?
적어도 단순히 학교를 그만두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벌이 계급을 상징하는 우리 현실 속에서 자퇴란 스스로 추락하는 것, 기회를 없애버리는 것 등으로 여겨진다.
대부분이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학교를 떠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이런 2012년 대한민국에서 스스로 자퇴를 선택한 나는 카메라를 들고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시놉시스
학생의 개성은 고려하지 않고 대학진학만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 학교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나는 자퇴를 선택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주변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이 심하다. 겉멋이 들었다고 말하는 어른도 있고, 19살이면19살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나의 선택이 과연 내가 한 선택인지 다른 어른이 심어준 선택인지 의심하는 어른도 있다. 자퇴 후 새로운 삶을 제대로 시작하려고 하는 나는 벌써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 자퇴하면 안 되는 거였나?
감독 소개
한동혁은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다. 초등학교 때 야구 선수가 꿈이었던 그는 교육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야구부를 때려치운 이후 대안학교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왔다. 대안학교에서 중등교육과정을 마친 후 일반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한가지의 목표를 향해 모든 학생이 달려가게끔 만드는 교육체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퇴를 고민하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을 하기 위해 그는 수많은 편견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오지필름은 그의 선택이 자퇴가 되든 그렇지 않든, 그의 선택을 올곧이 지지하는 의미에서 그가 만드려는 작품을 기획/제작하기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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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30년 동안 살아온 나의 마을 사상을 행정기관에선 '늘푸른 백양산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함께 어우러진 사상은 근대산업발달의 근원지로서, 근면과 성실로 새벽을 밝혀 한국 경제와 부산 발전의 중심지로 가꿔온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터전이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상은 오늘도 공장의 기계들이 돌아가고 있고, 여전히 노동자들은 근면, 성실하지만 한국 경제와 부산 발전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한국 경제의 중심은 금융과 서비스, IT산업으로 넘어갔고, 부산을 발전시키는 중심은 관광산업으로 전환되고 있다.
영화 <사상>은 한때 근대산업 발달의 근원지였던 사상의 현재 모습을 담는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노동의 가치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사회, 모래 위에 지어진 마을(사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래 위를 걷는 사람들처럼 힘겹고 불안해 보이지만 여전히 땀 흘리며 노동하고 있다.
행복의 척도가 경제력의 크기로 대변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경제와 발전의 중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언제 무너질지 모를 모래성을 쌓고 있는 건 아닐까?
시놉시스 문득, ‘내가 30년 동안 살아오던 사상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뒷짐 지고 천천히 사상을 걸으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그곳엔 국가의 권력에 의해 30년 넘게 농사짓던 곳을 떠나는 농부가 있고, 소와 돼지를 손질하는 노동자도 있고, 이제는 한국말도 익숙한 이주 노동자도 있다. 1년에 8개월만 일하는 늙은 용접공도 있고, 사상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젊은 노동자도 있고,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시민운동가도 있다. 사상은 낙동강과 하천을 끼고 공업, 상업, 주거지역이 뒤섞여 있는 곳이었다. 지역의 환경과 노동 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낙후 되어온 사상은 공동체가 무너져있었다. 노동자의 기억과 현재, 그리고 사상의 독특한 구조와 특징은 노동의 역사와 공동체의 의미를 구성하는 작은 점들이다. 영화 <사상>은 노동의 가치와 공동체의 의미를 돌아보면서, 그것이 갖춰지지 않고 흘러가는 사회는 언제 무너질지 모를 모래성을 쌓고 있는 것이란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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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의 전쟁
이야기
그녀와 난 방바닥에 드러누워 드라마 엔딩크레딧을 지켜보고 있다.
순간, 그녀가 나의 멱살을 잡으며,
"니 계속 이렇게 살래!!"
오랜만에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난 그녀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나의 유일한 무기인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웬 걸! 내 손에 들려있던 카메라는 그녀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하고 이리저리 내동댕이쳐졌다.
“자슥이 노숙자 돼가 천날만날 가방 메고 돌아다니는 꼴 볼라는 부모 있으면 나와보라해라~”
나의 어머니인 그녀는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인 내가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확신하고 있다.
드디어 때가 왔다. 그녀와 내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이어져온 긴긴 투쟁의 역사를 정리해야 할 시기다.
그녀와 나에게 가족은 필요했던 것일까?
담는 의미
2011년 난 재년과 우영의 결혼 과정을 담아 가부장제 속에서 결혼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고민한 <나비와 바다>를 제작했다. 결혼은 남성과 여성, 부모와 자식의 고정된 역할을 실현하도록 강요하는 가족을 만들어냈다. 실현 불가능에 가까운 가족 안에서의 역할 놀이는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거대한 줄기였고, 갈등의 근원이었다. 가부장제 속 가족은 여성을 가족 안에서 사적주인공으로, 남성을 사회 속에서 공적주인공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난 <나비와 바다> 제작 후, 가족이 만들어진 이후 우리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나에게 가족은 고통과 슬픔의 시작이었다. 가족 부양을 제대로 못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차가운 시선,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자세를 꾸짖던 아버지, 어머니의 외도, 아버지의 폭력, 단절되는 대화, 그리고 이혼, 나에게 부모는 헤어졌으면 하는 관계였다. 오랜 갈등 끝에 우리 가족은 해체되었다. 가부장적 결혼 제도 속에서 벗어난 그녀는 자신에게도 고통으로 기억되는 가족제도 속에 날 가두려한다. 남자로서, 아들로서, 장남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역할들이 있다고 말한다. ‘모성이 만들어졌다.’고 믿는 난 가부장적 사회 체계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한 삶을 선택했다. 남들과 같은 ‘정상적인 삶’을 살길 바라는 그녀는 이런 날 철들지 않은 아들의 치기로 여긴다. 아직도 자신들에게 빌붙어 사는 아들을 받들고 있는 그녀의 눈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고 외쳐대지만 아직 난 그녀의 정신·육체적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녀를 떠날 용기가 없다.
<그녀와의 전쟁>은 '정상의 틀에서 벗어난 나와 그녀의 가족사'를 돌아보면서 가족제도 안에서 상처 받은 이들이 결국 가족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틀을 들여다본다. 이것은 단순히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끊임없이 악순환되고 있는 가부장제의 실체이다. 더불어 근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상가족(가족 부양을 책임지는 근엄한 아버지,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 부모의 보살핌으로 커나가는 자식)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다양한 가족상을 찾아보면서 정상가족이 허구란 것을 밝히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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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會 동
올해 18회동 첫 모임은 국도가람예술관에서 '두개의 선'을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영화를 보고, 다큐멘터리 자체에 대한 논의를 깊게가져가자는 목표를 세웠다. 다큐멘터리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 재현 방법, 미학에 대한 분석등을 이야기해보자는 것이었다. '두개의 선'을 보고, 감독과의 대화에 참여하고, 나와서 짜탕에 술한잔 먹고, 그러다보니 애초에 목표로 했던 말들이 오가지 못했다. 정리하기로 했던 동혁이는 어디로갔어~~ ㅠㅠ
간단하게 첫 소식을 전한 이유는 오지가 18회동의 목표를 조금 수정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18회동의 목적은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을 발굴하는 창구로서 함께 읽고, 보고, 들으면서 역량을 기르자는 것이다. 작년에 2권의 책을 읽었고, 여러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 영화제를 찾아 즐겼다. 함께 했던 이들과 논의 끝에 18회동의 올해 목표를 정했고, 그 목표에 맞게 해보려했지만, 조금 더 큰 그림으로 18회동을 전환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거칠게 전하자면 18회동은 부산독립다큐멘터리작가네트워크를 목적으로 올해를 준비 할 것이다.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영화를 보고 영화를 분석하고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의 담론을 공유하고,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고, 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토론하는 것.
100km 직선으로 달리고 있던 차를 한순간에 90도로 방향전환을 할 수 없는 듯, 올해는 기존의 멤버를 유지하면서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를 꿈꾸는 이들을 더 모으려한다. 그들과 함께 영화보고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하려한다. 개인적으로 공부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함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공부뿐 아니라 같은 걸 함께 보고 나누는 행위는 사고의 폭을 넓히는데 가장 효과적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매월 18일 영화를 보고 나눌 것이다.
독립다큐멘터리를 꿈꾸는 이들이여 푸르름이 짙어지는 봄이 왔다.
우린 떨어져 있을 때가 아니다.
세상을 향해 십팔거리기 위해 부디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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