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게임 (2001) / 감독 경순, 최하동하 / 다큐멘터리 / 90분 

 

 

시놉시스 

 " 태초에 애국이 있었다. 그 영생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누군가는 민족과 국가란 공동체에서 얻은 신분과 부귀를 영원히 그의 자손에게 대물림하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민족과 국가란 공동체의 당위성과 개인의 가치를 초월하는 그 존엄성을 끝도 없이 창조하고 되뇌어야만 한다. 태내에서부터 세뇌된 모든 이들의 삶과 행동에서 영원히 자기복제되는 순환의 고리... 영생하는 애국의 원동력은 그 순환의 고리에서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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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18會動은 경순, 최하동하 감독의 애국자게임보고 토론했습니다.

참석자 - 문창현, 한동혁, 박배일 , 안명환, 허주영, 김현아

 

 다큐멘터리 '애국자게임'은 ,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름아래 , 태초부터 애국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 태초부터 있었다는 애국이라는 것이 시대가 변하고 역사가 다시 쓰이는 긴 시간동안 여전히 그대로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붙게 되는데, 어떻게 이것이 영생에 가까운 원동력을 갖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과 함께 애국을 옹호하기도 하고 , 이것을 가볍게 무시하기도 하는 양쪽의 등장인물들을 극명하게 대립시키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장면 중에 감독이 알을 낳는 부분이 있다. 이 장면은,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을 또 생산해 내는 것처럼 보였다. 애국이라는 이름 아래 , 좌 우로 나뉘지만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을 전하는 과정에 애국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게 좌파든 우파든 간에... 하지만 이 말은 좌파든 우파든 자기 세력을 늘이기 위해서  애국을 활용하고 있다. 라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데 여기에서 논란지점이 있다. 애국을 활용하지 않는 좌파도 있다. 그렇게 영화가 보였던 것은 새로운 해석이긴 하지만 조금 잘 못 이해한 부분인 것 같다. '애국자 게임'에서 좌파로 보이는 인물들은 애국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민족주의가 올바른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좌파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없어져야 하고, 이 민족주의라는 것을 자본주의 안에서 보수, 극우파들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논리를 알리는 용도로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있다.

한편으로는 '애국자 게임'을 보면 국민들이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감옥가는 사람들은 변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만 간다. 지금 현상을 유지하자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가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하는 나는 '사람은 늘 성장하고 , 변화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때문에 영화전반적으로 등장하는 조선일보의 존재는 애국이라는 것을 잘 이용해서 어떻게든 보수를 유지하고 , 이익집단의 이익을 보전하려는데 이러한 의도를 잘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옹호하고 있는 국민들의 모습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영화가 10년전 작품)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이어져 오는 것에 대해 답답함이 느껴지고 바뀌지 않는 이런 사상과, 현상들의 뿌리가 너무 깊이 박혀있어서 변화를 이야기하고, 그 변화를 믿고 지금의 현실을 바꿔보자고 하는 목소리에 한 표를 던지는 나로써는 이런 영화를 맞닥뜨렸을 때 현실이 버겁고 막막하게 만 느껴지고 이 영화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바로 답답한 현실을 검증해주는 것 같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함이 앞섰다.

또, 영화에 나오는 임지현교수가 체게바라에 관한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한 사실을 두고 감독은 체게바라 뒤에 박정희가 있다는 문구를 비춘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관점으로 토론이 엇갈렸다. 한 가지는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거대언론을 읽는 사람들이 국민의 대부분인데 우리가 조중동이 싫다고 해서 그 언론을 읽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것이 더 문제가 되지 않는가 하는 의견, 그러니까 영화 안에서 임지현교수의 의견은 조선일보 독자가 많기 때문에 체게바라를 조선일보를 통해서 이야기 한다면 많은 독자들이 체게바라의 의식을 인식할 것이고 그러면 체게바라의 사상과 행동들에 대해 학습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다. 또 하나의 의견은 감독이 말하는 체게바라 뒤에 박정희가 있다는 것, 이 이야기는 는 임지현교수가 말한 체게바라의 사상이 조선일보에 기고된다면 조선일보는 기고자의 의도대로 체게바라의 사상을 독자들에게 학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체게바라의 사상이 조선일보의 사상인 것처럼 보여지며 조선일보는 임지현교수의 기고를 철저하게 조선일보화 하여 독자들을 더 조선일보에 옹호하게 만들 것이라는 의견이다. 즉, 임지현 교수의 생각은 힘이 없어지고 조선일보의 거대화에 힘을 보태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논란의 지점은 충분하다. 임지현 교수의 말처럼 체게바라를 조선일보에 기고 한다고 해도 , 변화시킬 수 없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확인했다. 그래서 우리는 밖에서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지켜봐야 한다. 안에서 변화시킬 필요가 없다. 이런 의견이 사실 극단적이고 폭력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된다. 이 이야기도 맞고, 저 이야기도 맞다면 과연 세상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생각해봐야할지점이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임지현 교수에게 감독은 박정희 뒤에 체게바라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봤나고 던지는 질문에 임지현 교수가 머뭇거리며 그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것 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의 모순을 계속적으로 드러내는 영화다. 진보든 보수는 자신의 주장을 계속적으로 내 세우는데 , 그 주장안에서 모순이 계속 드러난다. 결국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진보도 , 제대로 된 보수도 없다고 드러내는 것 같다. 즉, 이 영화를 만드는 나(감독)도 모순의 지점에 서있다. 조선일보를 비판하고, 보수를 비판하지만 영화의 말미에 조선일보를 배달하는 감독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뒤에도 박정희가 있을 수 도 있다는 경각심을 일으키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사실 야구장에서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하면서 롯데! 롯데! 외치는데 이상한 감정이 드는 것은, 내가 롯데를 외침으로써 롯데기업을 옹호하는 것 같고 더 자본주의를 외치는 것 같아서 어느새 그렇게 외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반감이 드는 것을 보면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나는 보수와 자본을 옹호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경각심이 드는 이유도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한국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세밀하게 그 안의 감성과 속성을 들여다 봐야한다. 이 영화가 게임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있는 이유와 영화 장면에 게임하는 장면을 보여준 것은 결국 소프트웨어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대한민국의 구조를 얘기하는 것. 그 안에 들어있는 소프트웨어들을 다층적으로 만들고 , 그것을 어떻게 조종을 하느냐에 따라 애국이라는 것이 국민들 마음속에서 커지고 작아질 수 있다는 우리의 사회구조를 인식해야 된다.

영화를 다 보고 문득 든 생각이다. 과연 나는 애국을 두고 볼때, 말하지 않음으로써 애국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의문이 들었다. 영화에서 처럼 좌파는 애국주의자가 아니다 애국이 싫다 하면서 애국에 대한 의식을 내세우지도 , 말하지도 않는다. 그 반면에 애국을 옹호하는 보수 측, 애국주의자들은 더더욱 민족주의와 애국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애국을 위해 노력하는데 그 반대측에서는 애국을 말하지않고, 애국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내지 않고, 반대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는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애국주의를 더 공고히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모순이다 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야기적인 측면 외에도 영화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이 영화는 인물을 드러내는 방식이 감독의 주관적인 감정이 너무 개입되어 있다.  좌든 우든 그 사람의 논리를 마구 깨버리고 반대되는 의견을 극명하게 대립시킴으로써 앞에 말한 인물을 희화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면은 등장인물들에게 폭력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애국자게임이라는 말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표현방식 또한 내가 내 맘대로 이 게임을 조종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바로 게임의 주도권은 게임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나로써 그 게임을 작동시키는 사람이 다큐멘터리 감독인데도 인물들이 희화화 될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지난 18회동 사진. 

옷이 긴거보니 봄이었던 것 같아요~ ^^

 ▶ 18회동, 유일 청소년 한동혁군!

 ▶ 18회동,  김현아 허주영.

▶ 18회동, 좌부터 문대표, 동혁군, 일개감독

 

 

 

 

 

 

 

변방에서 중심으로 (감독_ 홍형숙)

 

 

 

 

  영화적인 것을 놓치지 않으면서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서울영상집단의 창단 20주년 기념 DVD를 보았다. 독립영화에 대한 특별한 시선이 있는 좋은 영화들이 많았다. 우리는 그 중 1997년에 홍형숙 감독의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보았다.

당시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등장인물로 나온다. 그들은 자신이 왜 영화를 하는지, 독립영화의 위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등과 같은 독립영화를 보는 자신의 시각을 이야기한다. 영화를 하는 이유에 중에서는 '온전하게 나를 표현 할 수 있는 매체니까', '재미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니까' 영화의 목적에 대해서는 '제도화 되어 있는 것에서 작은 빈틈을 찾아서 비판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정치적으로, 사법적으로 벗어난 방식' 등의 의견이 인터뷰를 통해 나왔다.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를 알게 해주기도 했다. 그 전에는 노동문제와 같은 사회적인 이야기를 영화에 주로 담았지만 점점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와 같이 그저 시골 학교가 사라져가고 있는 모습을 영화에 담음으로써 새로운 방식으로 자연과 민주주의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등 독립영화가 다양화가 되어가는 모습을 느꼈다. 또 제1회 인디포럼에서 <파업전야>를 상영하다가 국가로부터 상영이 중지되는 장면도 나왔다. 영화를 본 노동자들을 위협하기도 하는 등 영화에 대한 검열이 심했던 시절(지금도 검열이 없지는 않지만)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위법여부를 관객에게 묻는다.'라는 현수막을 걸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냈던 그 시절 영화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상계동 올림픽>의 감독이신 김동원 감독님의 인터뷰였다. 감독님은 사실 지인의 부탁을 받고 처음 상계동을 찍으러 간 것이었다고, 하루만 찍어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감독님은 3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단편다큐멘터리를 완성하기 위해 3년을 촬영하셨다고 하셨다. 우연히 마주친 현장이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 으로써 외면 할 수 없는 현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감독님은 '영화를 찍기 위해 이곳으로 왔고, 이들을 만났다. 하지만 또 다시 이런 모습들을 보고 싶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카메라를 가장 필요로 하는 현장에서 오랜 시간동안 함께 그들의 상처를 지켜보고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기 위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신 감독님의 모습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독립영화를 지향하고 있는 18회동 사람들끼리도 독립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이야기 했다. '나는 왜 영화를 하는가?'라는 주제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창현이 누나는 영화에서 어떤 감독님이 말씀하신 '나를 표현 할 수 있는 매체니까'에 동의한다고, 자신도 그렇다고 말했다.(맞나요 누나?) 누나의 의견에 대해서 배일이형은 자신은 다르게 생각한다고 또 다른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그저 듣기만 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영화를 통해 독립영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방향, 논란, 역사를 알게 되었지만 사실 정작 내가 가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내 19년 인생에서 11년을 학교에서 보낸 나로서는 그저 영화를 좋아했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영화의 힘은 어떤 것인지 충분히 이해할 시간이 적었기 때문 인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 겪을 여러 가지 경험들 속에서 나도 내가 영화를 하는 이유들을 찾아 나갈 것은 분명하다. 조금 더 공부를 해봐야 겠다. 영화도 많이 보고. 

 

 

 

 

글 한동혁

 

 

 

하늘과 땅 사이 2008 (감독 - 시몬 레렝 빌몽)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를 배경으로 한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주인공으로는 서커스단의 곡예사가 꿈인 한 소년이 나온다. 소년은 자신의 스승과 함께 아찔한 묘기를 연습한다. 스승은 꾸지람을 하기도 하고 칭찬을 하기도 하면서 소년을 가르친다. 11살밖에 되지 않은 작은 소년은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훈련한다. 스승은 소년을 꼭 안아주며 소년의 꿈을 지지한다. 공연이 있는 날에 소년은 무대에 오르기 전에 잠시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막이 오르고, 어린 제자와 스승은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관객들의 갈채가 쏟아진다.

주영이형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 소년이 서커스를 하는 것을 보고 소년이 서커스단에서 혹사당하고 있는 것을 영화로 찍은 것이 아닌지 짐작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는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우리는 약간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영화를 본 것에 대해서 새로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우리가 보는 영화들은 대부분 사회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에 대한 인식이 조금 굳어져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대한민국이 다큐멘터리로 담을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 거리들이 있는 나라니까. 하지만 사실 이집트도 대한민국 못지않게 혼란스럽고 위태롭지 않은가? 사회가 어떠하든 간에 이런 사적인 다큐멘터리도 존재한다. 이런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작은 에피소드도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줄 수 있음을 느꼈다.

 

 

 

리터니 2009 (감독 - 마붑 알엄 펄럽)

 

 

  반두비의 카림으로 친숙한 마붑 알엄 펄럽 감독의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다. 귀환자라는 뜻의 이 영화는 한국에서 고국으로 추방당한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마숨은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노조 활동가이다. 그는 10년 이상을 한국에서 살았다. 하지만 어느 날 두 명의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고국으로 추방당하고 만다.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자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어머니와 재회하고, 태어나기 전에 고국을 떠났기 때문에 태어난 이후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딸과 첫 만남도 갖게 된다. 이들은 가족과의 반가운 만남 후에 또 다른 추방당한 동지들을 찾아 네팔로 건너간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방글라데시와 네팔에서 다시 연대한 이들은 한국에서 이루지 못했던 그들의 뜻을 다시 이루기 위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다.

'동지', '연대', '투쟁'라는 단어들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이 위의 단어들을 일상적으로 쓴다. 자신의 모국어도 아닌 낯선 외국어인 한국어를 쓰면서, 한국인보다 더 친숙하게 위의 단어들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약간 불편함을 느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서는 '동지들끼리 연대하여 투쟁하여야'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자신의 가족들을 고국에 남겨두고 타지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만 하더라도 충분히 외롭고 힘든 것 일 텐데 이주노동자들은 또 다른 무엇과 싸워야만 한다. 정작 한국인들은 관심도 없는 일을 위해서 저 먼 다른 나라에서도 계속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알았다.

 

 

글 한동혁

 

 

 

 

  18 會

 

   올해 18회동 첫 모임은 국도가람예술관에서 '두개의 선'을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영화를 보고, 다큐멘터리 자체에 대한 논의를 깊게가져가자는 목표를 세웠다. 다큐멘터리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 재현 방법, 미학에 대한 분석등을 이야기해보자는 것이었다. '두개의 선'을 보고, 감독과의 대화에 참여하고, 나와서 짜탕에 술한잔 먹고, 그러다보니 애초에 목표로 했던 말들이 오가지 못했다. 정리하기로 했던 동혁이는 어디로갔어~~ ㅠㅠ 

간단하게 첫 소식을 전한 이유는 오지가 18회동의 목표를 조금 수정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18회동의 목적은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을 발굴하는 창구로서 함께 읽고, 보고, 들으면서 역량을 기르자는 것이다. 작년에 2권의 책을 읽었고, 여러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 영화제를 찾아 즐겼다. 함께 했던 이들과 논의 끝에 18회동의 올해 목표를 정했고, 그 목표에 맞게 해보려했지만, 조금 더 큰 그림으로 18회동을 전환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거칠게 전하자면 18회동은 부산독립다큐멘터리작가네트워크를 목적으로 올해를 준비 할 것이다.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영화를 보고 영화를 분석하고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의 담론을 공유하고,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고, 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토론하는 것.
100km 직선으로 달리고 있던 차를 한순간에 90도로 방향전환을 할 수 없는 듯, 올해는 기존의 멤버를 유지하면서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를 꿈꾸는 이들을 더 모으려한다. 그들과 함께 영화보고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하려한다. 개인적으로 공부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함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공부뿐 아니라 같은 걸 함께 보고 나누는 행위는 사고의 폭을 넓히는데 가장 효과적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매월 18일 영화를 보고 나눌 것이다.
독립다큐멘터리를 꿈꾸는 이들이여 푸르름이 짙어지는 봄이 왔다.
우린 떨어져 있을 때가 아니다.
세상을 향해 십팔거리기 위해 부디 함께 하자~
  

 

 

 



지난 11월 12일 18회동이 9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 해를 넘겨
1월 7일 토요일 10번째 회동으로
세계다큐멘터리 영화사 라는 두꺼운 책을 마무리지었습니다.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 참가 이후,
책을 들고 오랜만에 모인 9번째 18회동은 여느때나 다름없이
유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사 , 굵디 굵은 책보다 더 굵고 깊은 역사를 갖고 있는 다큐멘터리.

이것을 파헤치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2 차례의 모임에 걸쳐서,

한편의 시와 같은 다큐멘터리
역사의 현장에서 다큐멘터리,
기업을 등에업고 제작되었던 다큐멘터리 ,
보이는 그대로가 짱이다! 다이렉트 시네마와,
여러가지의 형태로 촉매제 역할을 했던 시네마 베리테
게릴라, 블랙필름 까지 다큐멘터리의 스펙타클한 역사를
공부했었는데요.



간단한 정리로 그 많은 역사의 기록은 다 할 수 없지만,


18회동의 가장 Young~ 한 멤버인 한동혁 군이,
솔선수범 정리 해주었습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첨부파일 참고하시어 한 번 읽어 보시구요 ,


2012년 새해는,

18회동도 좀 더 새로운 모습으로,
다큐멘터리에 대해 공부하는 모임이 되고자 합니다. 

사실 18회동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단순한 관심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사람들에게
다큐멘터리를 제작함에 있어
정확한 이론적 지식과, 다양한 작품들을 함께 보고,
공유하면서
각자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 모임입니다.


좀 더 깊게 , 좀 더 진지하게
다큐멘터리를
더 많이 보고, 토론해서 
다큐멘터리의 세계를 제대로 파헤칠수 있도록, 할 것인데요.



새롭게 비상할 18회동 !
다음 모임도 어김없이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자함에 있어, 진지하게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장이 필요하신분은
언제든지 18회동의 문을 두드리세요!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
18회동은 2012년에도 힘차게 회동하겠습니다.



▲  유쾌한 18회동 모임현장. 지난 11월 12일 공간초록























책내용 정리를 맡은 한동혁군 ▶ 






책내용 보기 - 




▲ 1월 7일 10번째 모임. 발가락 손가락 시리던 10번째 모임이었습니다.

▲ 후끈후끈한 책거리 현장. 2만원에 푸짐한 상!! 완전 최고최고!! 훈훈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오지가 반만 쏜다!쏜다!쏜다!' 라는 프로젝트로 다녀왔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18회동 멤버들은 잘 먹고, 잘 보고, 잘 다녀왔답니다.
김현아 멤버가 그 후기를 남겨줬는데요.
 얼마나 좋은 경험들을 늘어놨는지... 도대체 이 프로젝트 누가시켜준거야~!!!
오지의 공동체 육성 프로젝트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됩니다~~~~~


 

 

 

제3회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다녀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됐다. 그 때 기억을 되살리니 또 씩 웃음이 나고 즐겁다. 9월 23일 아침 7시 30분, 우리는 구포역에 모여 비몽사몽으로 서울행 기차를 탔다. 내 생애 첫 영화제 여행이었다. 떨리고, 기대되고, 어떤 영화를 볼 지 생각하면서 경기도 파주에 도착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영화를 봤다. DMZ 영화제에서 본 첫 번째 영화는 '권투도장'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말았다. 반복적으로 보여 지는 권투도장 안의 사람들, 특별한 줄거리가 없는 전개.. 사실 뭘 이야기하는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2박 3일 동안 10편이 넘는 다큐멘터리를 봤지만, 모든 영화가 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기억에 남는 영화들 중에는 깊이 공감했거나 재밌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쉽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더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준 영화도 있다. 예를 들어 '히라노 카츠유키'의 '감독실격'은 하루 종일 머리를 지끈거리게 할 정도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아주 내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불타는 사랑, 갈등,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의 순간까지 말이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에 공감할 수 없었던 이유는 '과연 두 사람의 관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나치게 사적인 일들을 통해 감독은 사람들에게 뭘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고, 나라면 사랑하는 이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에 절대로 카메라를 들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전거를 타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만의 이별의식을 치르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찍는 행위가 나에게는 거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영화를 본 많은 이들과 대화하면서 그 감독을 이해하려고 해 봤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일본의 사회문화적인 분위기라던가 주제와 형식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고정된 사고방식에서 그 영화를 본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도 들었다. 사실 나에게 이 영화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숙제 같다.


   또 인상 깊었던 영화는 강유가람 감독의 '모래'다. 이 영화도 사적 다큐멘터리인데, 이 영화는 사적인 영역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투기의 대상이 돼 버린 아파트, 사교육 문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삶 등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영화 안에 녹아 있다. 또 감독이 끊임없이 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에 부딪치더라도 의견을 나누려는 지난한 과정이 의미 있게 보였다. '고양이 춤'이란 영화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영화를 보는 동안 인간이 독단적으로 만들어 놓은 아주 인위적인 공간 안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고양이들을 이유 없이 무서워하고 피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영화제 기간 동안 진짜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영화도 실컷 보고, 사람들과 같이 본 영화에 대해 생각을 나누고, 매끼 맛있는 식사도 하고, 밤에는 영화보다 더 즐거운 담소시간을 가졌다. 영화를 만든 감독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또 오지를 통해 소중한 사람들을(영진, 나경, 주미언니) 알게 돼서 너무 행복하다. 오지필름이 아니었으면 어찌 이런 경험들을 할 수 있었을까? 박 감독님과 문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지가 쏜다!'는 나에게 '함께 하면 더 행복하다.' 라는 삶의 중요한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싸랑합니더, 오지필름!!!! 
                                                                                                                          ▲ 18회동 멤버 김현아 양






                        ▶ 완전 청명했던 파주출판단지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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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하고 10일 만에 18會動  8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번 모임은 오랜만에 만난 탓에 ,
토론보단 안부 묻기에 더 집중을 한 것 같아요 ~

고등학생 동혁군도 여름방학을 했고 , 학기 초에 짧았던 머리도 많이 길었습니다.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것 같은데 ..
머리속에 이 책의 내용들이 잘 들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



전쟁 속에서 다큐멘터리


이번 모임에서는 세계다큐멘터리 영화사 3장. 다큐멘터리 사회참여 부분에서

나팔수 : 전쟁의 선봉에 서서 와, 전범을 고발하다 를 읽고,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이번 장은 사실 별로 할 이야기가 없었어요~
나팔수 : 전쟁의 선봉에 서서 부분은 전쟁 중에 다큐멘터리 영화가 어떻게 활용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전범을 고발하다는 말그대로 ,
전쟁 범죄를 고발하는 역할을 다큐멘터리가 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토론이 끝나고 알랭 레네가 감독을 한 <밤과 안개>를 감상했습니다.
너무 충격적인 장면에 20여분 동안 인상이 펴지지 않았는데요 ..




- 1955년에 찍힌 이 다큐멘터리는 나치 유태인 수용소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뉴스릴 등 유태인 수용소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장면과 함께, 잡초가 우거진 수용소, 버려진 녹슨 침대의 현재 모습이 병치된다. 실제로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Jean Cayrol 이 직접 쓴 나레이션은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을 더 깊이 있게 만든다. (Daum 영화 발췌)





전쟁을 겪으면서 다큐멘터리는 영상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전쟁을 거치고 있는데 , 왜 ? 굳이 ? 카메라를 들었어야 했나 하는 어리석은 질문에 , 
역사적인 사실을 카메라가 없었다면 기록을 한다는 생각을 못했겠지만,
카메라가 있었고, 영화라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존재하는 한 당연한 선택이라는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책과 사진, 영상이 있을 때,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을 말한다면 ,
당연히 영상이라고 할 것입니다.
눈으로 직접보고 느낄 수 있으니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거라 생각이 되는데요 ,

다큐멘터리의 영향력도 여기서 오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다큐멘터리는 처음 장르가 등장할 때 부터 정의하기를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진 영상이라는
것 때문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실이라고 믿게 하는 것 때문에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 배우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 영상입니다.

이 장을 공부하면서 책에서 이야기하는 전쟁중에 일어난 많은 사건들과 , 그 사건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가
세계의 보도 기관으로 부터 주목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기록적인 측면에서, 영화적인 측면에서 많은 학자들에 의해 회자되고, 영상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학습자료로 활용됩니다.

이런 것들을 봤을 때, 전쟁기간 동안 다큐멘터리 영화가 높은 지위를 획득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이었습니다.

이번 모임의 정리는 이정도로 하겠습니다.


다음 모임 때 만나요 !

 

세계다큐멘터리 영화사 책.
3장 다큐멘터리의 사회참여 - 애국적 다큐멘터리를 읽고 토론했습니다.

이 장은 다큐멘터리를 애국의 도구로 활용했던 감독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대부분이 작품에 대한 해설들이었구요, 그래서 간단하게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애국적 다큐멘터리

존 그리어슨이 등장합니다. 드디어!

존 그리어슨은 다큐멘터리 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는데요,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라 정의했습니다. 즉, 사회현상의 인과관계를 암시하는 방향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이것을 ‘현실을 다듬는 망치’라 표현했습니다. 또한 평범한 민중과 그들의 존엄성을 찬미하는 것이 다큐멘터리라고 했습니다.

이 책에서 존 그리어슨이 말하길,

‘나는 영화를 일종의 설교단으로 보고 있다’ 영화가 당시 교회나 학교가 담당하고 있던 교육적 역할을 맡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제작자이기 전에 선전가가 되라고 강조하면서 영화란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라고 했지요. 영화의 역할이란 국민을 계도하는 교육 활동의 차원을 넘어서 국민 복지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계몽활동이라고 인식했습니다.

그리어슨의 첫 감독, 제작한 작품 <유망선>(1929)은 '증기와 강철의 서사시'로서, 노동자에게 노동의 존엄성을 부여한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후 그는 EMB 내 필름유니트를 결성합니다. 여기서는 모두가 배우는 입장이었고, 선술집을 자주 찾았다네요. 이 모임은 세미나 풍으로 깊이 있는 대화내용과 날카로운 비평을 자주 했습니다. 노동자에게 정당한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부와 기업의 스폰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작품의 내용이 두루뭉술했습니다.

이 장에서 주목할 작품은 바로 <실론의 노래>(1935)입니다. 실론의 문화를 찬미하면서도 제국주의의 매개체인 홍차의 역할을 확실히 보여주었고 사람들에게 시장개척의 열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사운드 트랙 실험적이었고, 1934년 EMB 해체와 함께 런던 우체국 산하의 GPO안에 필름 유니트가 속하게 되고 여기서 완성이 됩니다.

<주택문제>라는 작품은 폐허가 된 빈민굴을 부수고 국가에서 주택을 건설한다면, 사회가 근대화 될 뿐만 아니라 가스등의 수요도 증대된다며 관련 기업을 설득했다. 그러면서 폐허가 된 빈민들의 실상을 알리는데 주력했습니다. 여기서 사운드적 실험은 직접증언(인터뷰)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존 그리어슨은 다큐멘터리라는 용어가 지니고 있던 선입견을 몇 년 안에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외딴 곳 인물들을 인간적인 친밀감으로 부각 시키는 장편영화에서 비개인적인 사회문제를 다룬 단편영화로 어떤 입장을 분명히 내세우는 형태로의 변화 말이죠.

존그리어슨이 이렇게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확장하고 있는 사이의 세계적인 추세를 살펴보면, 독일의 다큐멘터리는 히틀러 정권의 대중계몽을 위해 선전장관인 요셉 괴벨스는 독일 내의 모든 매체의 제작배급 및 전시를 통제합니다. 히틀러는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을 엄청 지지했지요, 영화가 진실로 국민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리라는 신념을 가진 히틀러는 리펜슈탈에 의지하여 영화를 만들어 내라고 요구합니다. 리펜슈탈은 철저하게 애국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내지요, 정권의 간섭에서 벗어나 영화 작업을 했습니다. 투쟁의 의지가 아닌 예술의 의미로서 말입니다. 1934년 독일 정당대회를 찍은 <의지의 승리>(1935)는 독일 국민의 자부심을 갖게 했습니다.

반면, 불길한 공포를 느끼게도 했는데요, 히틀러의 지도력에 존재하는 악마적인 성질과 이를 증명하는 인간성의 결여에 대해 생생하게 표현했습니다.

미국은 이 당시, 대공황 상황입니다. 이때 모든 미디어 매체는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낙관주의로 일관하는 정부의 선전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사진연맹은 기아에 허덕이고 보금자리에서 쫒겨나 공원이나 철로 변에 움막을 짓고 사는 사람, 파업과 항의 현장을 기록하는데 전념했지요, 정부가 주로 주도 하여 다큐멘터리계를 장악하게 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 취임 후 더욱 폭넓은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영화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갖은, 로렌츠는 정부 예산으로 영화 찍습니다. <평원을 일구는 괭이>와 <강>입니다. <강>은 뉴딜정책에서 관심이 있는 여러 문제점을 찍어 사업의 정당성을 부여한 작품입니다. 이후 점차 정부의 다큐멘터리 예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원래 체제인 민간이 주도하는 형태로 돌아갑니다. <시간의 진행>(1935)은 이 형태로 제작된 영화인데요, 뉴스 영화의 혁명 '진실로 충실한 조작'으로, 배우를 출연시켜 영화를 진행합니다.

세계적으로도 전쟁과 사회 문제를 다큐멘터리영화로 기록했고, 형식적인실험도 계속되어 집니다. <상해>는 전쟁의 황폐함을 기록했고, <고바야시 잇사>(1940, 가메이)는 황폐한 땅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는 농민의 생활을 고바야시의 시조를 빌려 풍자적으로 표현합니다. 허가를 받은 자만이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포고령을 내렸고, 예방구금법을 제정하여 위험인물을 체포할 수 있는 조치를 1939년에 취하게 되었어요, 가메이는 자격발탈을 당했고 1941년 10월 체포되어 거의 2년간 감옥에 있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다큐멘터리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삶은 우리에게 속한다> (1936, 장르누아르), 세미다큐멘터리 형식을 가지고 있구요, <전선의 대중>은 화면 밖 해설을 사용하여 변화를 시도 합니다. 변사와 같은 형식이죠, 이것은 차츰 다큐멘터리의 제작에 있어 상투적인 수단으로 쓰이게 됩니다.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는 다큐멘터리영화 제작자들의 활동의 힘입어 여러 기법들이 발전하게 되는데요, 네덜란드의 요리스 이벤스: 초기 <다리>, <비>에서 보여줬듯 운동의 패턴을 다루었고, <새로운 대지>, <보리나제>와 같은 작품으로 사회문제를 파고들었으며, 말기엔 <4억>이라는 작품에서 보여줬듯 품성의 문제로 옮겨갑니다. 이벤스는 폭발의 굉음에 휩싸여 어떠한 문제를 놓고 탐색하기보다는 행동 나팔을 울리는 시대의 작가가 됩니다.

이 시기 다큐멘터리스트들은 정부의 개입(돈, 검열)안에서도 선전가와 예술가 사이를 적절히 오가며 활동했다는 것이 포인트!


예술이 뭐라고?


예술이 뭔지에 대한 논점으로 시작했습니다.

저번 시간에도 ‘화가, 영상으로 그린 수채화’에서 잠깐 언급했었는데, 예술의 의미, 존그리어슨의 의견과 비슷하다. 예술이 힌트를 주지 않으면, 그러니까 삶에 있어 살아가는데 힌트를 주지 않으면, 예술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장에서 예술에 대한 생각보다 계몽이라는 말에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영화와 예술과 대중을 분리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하는 자신이 계몽적인 것에 너무 주의를 기울인 것 같아서 감독으로서 너무 우쭐해하는 것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아서 조금 거슬렸다. 영화로 사람을 가르치려는 것 같은 느낌? 권위의식이 너무 있는 것 아닌가?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권위의식이라기 보단, 내가 미디어 운동을 처음 시작 했을 때, 의무감을 조금 설명하고 싶다. 사실 이런 작업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영화를 그만두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지금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무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왜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냐면, 아무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해야겠다. 라는 의무감을 느꼈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구로써 미디어를 활용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지금 이렇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말한 계몽이라는 말도 이 의미였던 것 같다. ‘누구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해야 겠다’는 그런 심정에서 계몽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까..

나도 그런 의미에서 계몽이라는 의미를 해석하고 싶다. 그 단어 자체는 가르친다는 의미가 있다. 얼마 전, 노동관련해서 작품을 했을 때, 사람들이 잘 못 알고 있는 사실을 고쳐줘야 겠다는 인식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도 계몽을 하려는 마인드가 있었던 것 같다. 계몽의 마인드가 과용되지 않도록 경계를 하면서 작품을 만들어야 될 것 같다.

예술을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계몽을 이야기 하게 됐는데,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몇몇 사람을 위한 예술, 영화가 아니라, 인종을 막론한 모두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예술,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진 않겠지만..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예술은 정말 힘들 것 같은데..


어떤 영화든, 재미의 영역을 확장시키면 되는데 재미의 영역이 한정되어있는 것 같다.
모든 이들을 만족시킨다는 것 보다 의미를 어떻게 전달할 지 방법적인 측면에서 고민을 하면 재미도 따라오는 것 같은데.. 사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재밌게 만들려면 엄청난 내공이 있어야 된다. 예술, 재미, 다 고민이 필요한 건 당연한 것인데.. 너무 어렵다.


이 후,
국도예술관에서 상영하는 ‘트루맛쇼’를 보기위해, 서둘러 토론을 마무리 했습니다. ‘트루맛쇼’에 대한 생각들은 어떠했을까요?

 
 GV까지 함께한 저는, 솔직히 너무 지루한 GV였습니다. 영화는 너무 재미있었는데, 방송PD 를 하셨던 감독님의 내공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유쾌하려고 노력하시는 감독님에 비해, 방송가에 일어나고 있는 광고의 역할이나, 체제에 대해서 너무 궁금한 관객들이 많았나봐요, 그래서 조금 지루한 GV였습니다.

  TV에서 나오는 맛집들이 맛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맛집을 광고하는 것이라던 감독의 메시지. TV 속의 맛집들은 맛이 갔고, 시청률과 아이템만 쫓는 프로그램들에 엄청난 질타를 가한 작품입니다. 사실 1시간 30분 짜리 맛집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았어요. 내용과 형태는 방송PD 출신의 감독님이라, 지루할 틈 없는 진행이었지만, 기존 프로그램 인용이 위주였기 때문에, 또 형식면에서도 감독님의 의도가 기존 방송프로그램을 꼬집는 것이어서 똑같은 형태로 똑같이 비판하겠다는 의도 때문에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아무쪼록, 국도예술관에서 상영이 <6월 10일 금요일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관심있으신 분들 꼭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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