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전쟁
이야기
그녀와 난 방바닥에 드러누워 드라마 엔딩크레딧을 지켜보고 있다.
순간, 그녀가 나의 멱살을 잡으며,
"니 계속 이렇게 살래!!"
오랜만에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난 그녀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나의 유일한 무기인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웬 걸! 내 손에 들려있던 카메라는 그녀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하고 이리저리 내동댕이쳐졌다.
“자슥이 노숙자 돼가 천날만날 가방 메고 돌아다니는 꼴 볼라는 부모 있으면 나와보라해라~”
나의 어머니인 그녀는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인 내가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확신하고 있다.
드디어 때가 왔다. 그녀와 내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이어져온 긴긴 투쟁의 역사를 정리해야 할 시기다.
그녀와 나에게 가족은 필요했던 것일까?
담는 의미
2011년 난 재년과 우영의 결혼 과정을 담아 가부장제 속에서 결혼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고민한 <나비와 바다>를 제작했다. 결혼은 남성과 여성, 부모와 자식의 고정된 역할을 실현하도록 강요하는 가족을 만들어냈다. 실현 불가능에 가까운 가족 안에서의 역할 놀이는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거대한 줄기였고, 갈등의 근원이었다. 가부장제 속 가족은 여성을 가족 안에서 사적주인공으로, 남성을 사회 속에서 공적주인공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난 <나비와 바다> 제작 후, 가족이 만들어진 이후 우리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나에게 가족은 고통과 슬픔의 시작이었다. 가족 부양을 제대로 못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차가운 시선,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자세를 꾸짖던 아버지, 어머니의 외도, 아버지의 폭력, 단절되는 대화, 그리고 이혼, 나에게 부모는 헤어졌으면 하는 관계였다. 오랜 갈등 끝에 우리 가족은 해체되었다. 가부장적 결혼 제도 속에서 벗어난 그녀는 자신에게도 고통으로 기억되는 가족제도 속에 날 가두려한다. 남자로서, 아들로서, 장남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역할들이 있다고 말한다. ‘모성이 만들어졌다.’고 믿는 난 가부장적 사회 체계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한 삶을 선택했다. 남들과 같은 ‘정상적인 삶’을 살길 바라는 그녀는 이런 날 철들지 않은 아들의 치기로 여긴다. 아직도 자신들에게 빌붙어 사는 아들을 받들고 있는 그녀의 눈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고 외쳐대지만 아직 난 그녀의 정신·육체적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녀를 떠날 용기가 없다.
<그녀와의 전쟁>은 '정상의 틀에서 벗어난 나와 그녀의 가족사'를 돌아보면서 가족제도 안에서 상처 받은 이들이 결국 가족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틀을 들여다본다. 이것은 단순히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끊임없이 악순환되고 있는 가부장제의 실체이다. 더불어 근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상가족(가족 부양을 책임지는 근엄한 아버지,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 부모의 보살핌으로 커나가는 자식)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다양한 가족상을 찾아보면서 정상가족이 허구란 것을 밝히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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