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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會動

18會動, 5월 5일 6번째 모임.

18會動 , 6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 '세계다큐멘터리 영화사' 책을 읽고 토론했구요 ,
6번째 모임 참석자는 박배일, 허주영, 강성호, 문창현, 김현아, 한동혁
입니다.

토론 범위는 '세계다큐멘터리영화사'

2. 개척기 다큐멘터리
2) 보도 기자 ; 현실로 돌아오다.
3) 화가 ; 영상으로 그린 수채화.

를 읽고 토론했습니다.



 

보도기자 ; 현실로 돌아오다.


미국의 로버트 플래허티가 탐사, 탐험 미지의 세계를 기록하여 문명인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면, 지가베르도프는 1909년 개척기시대에 현실을 보도하는 보도기자로서의 역할로 뉴스영화라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다.


1909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유럽 전역을 휩쓴 예술사조인 미래파의 영향을 받은 지가베르도프는 1917년 뉴스영화 <영화화보> 의 편집책임자를 맡았다. 의학도인 베르도프는 이즈음 미래파에 심취한다. 미래파는 기존 모든 예술사조를 비판, 기계소음, 리듬, 변화하는 세계의 역동성을 표현한다. 이는 미래파시인에서 비롯됐다. 베르도프는 투쟁, 위기, 재난, 승리의 내용이 담긴 필름들을 주로 편집하고, 자막을 체계적으로 편집작업 했다. 1918 세계대전상황에는, 전쟁의 상황을 알리는 일을 했다.


주로 촬영한 필름만 편집을 하던 베르도프는 1920년 부터 22년 사이 러시아의 수많은 사건들이 그에게 폭넓은 역할을 요구했고, 삼인회의의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삼인회의는 '연극, 극영화는 국민에게 마약관 같은 존재' 라고 표현했다. 베르도프는 소련의 영화과제가 사회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라 생각하고,  영화인들은 '카메라라는 세밀한 눈으로 관찰의 전문가가되어 눈에보이는 생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소련의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키노프라우다는 명칭 자체가 하나의 선언문으로 성격을 띤다. 소련정부의 중앙 기관지가 된 프라우다지의 정신을 계승함을 주장하고 나선 이 명칭은, 프롤레타리아 영화는 효과를 의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현실의 모습은 진실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베르도프의 영화제작 원칙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키노프라우다는 진실한 영화, 기록영화라는 말로, 프랑스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시네마베리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키노프라우다의 본질적 요소는 국민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에 초점을 두었다. 소아과 병원에서 전쟁고아들에 대한 구호활동을 벌이는 모습을 찍은 영화는 굶주림의 시대를 화면의 배경으로 삽입함으로써 사업의 중요성을 알렸고, 카메라를 통해 모순된 상황폭로하였으며, 사건의 양면을 보여줌으로써 작품에 박진감을 더했다.  소재가 평범해도 그 처리 방법은 생기가 넘치고 기지가득함을 연출했다.


베르도프는 이 후 삼인회의에서 키노아이라 불리는 단체로 넘어간다. 이 후 발표한 선언문에서는 카메라가 가지는 상상도 못할 신기한 능력을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기본적이고 본질적 : 세계를 영화로써 인식하다.

기계에게 길을 양보하라 : 카메라 라는 눈을 통해 본 영화를 이용하라

1초에 16프레임의 필름이 흐른다 : 인간의 눈보다 정확한, 카메라는 기술개발을 통해 보다 더 뛰어난 능력 발휘한다.


베르도프는 편집자 역할을 강조했다 "모든 장면이 일관된 주제하에 구성되어 총체적으로 진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는 가끔 기술적 속임수 특수촬영을 하여 비난 받기도 하였으나 사회적 현상의 순간순간을 상징적으로 효과있게 잘 포착해냈다.


1929년 파리를 방문한 연설에서  - '허구적인 장면이 가미된 영화보다, 있는 그대로의 영화에 중점을 둔다는 원칙을 확립함으로써 무대장치를 떠나 생생한 현실을 직접담아냈다. 그것은 또한 극장 무대에서 뛰어나와 실생활의 현장에 들어가기 위한 부단한 투쟁의 과정이었다.' 라고 발표한다.
 현실을 내용을 담을 것을 열렬히 주장한 베르도프,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점차 쇠퇴해갔으며, 
이후, 에이젠스테인(전함포템킨), 푸도프킨(몽타주이론), 도브첸코 등의 작품으로 시민들의 관심은 옮겨갔다.


에이젠스테인의 전함포템킨은 드라마이긴 하나 어떤 사건을 기록한 측면에서 뉴스영화로 표현 다큐멘터리 범주에 넣기도 했다.


 스탈린도 레닌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선전의 도구로 사용했다. 베르토프는 작품에대한 검열로 어려움을 겪지만 '카메라를 짊어진 사나이'를 내놓음으로써 다시금 명성을 되찾기시작한다. 이 작품들에 사용된 기교들은 무척이나 진지하게 사용되었으며, 우리의 의식을 깨우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영화의 진실이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강한 풍자를 드러냈다.

주 논점은 '보도물 성격의 뉴스영화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것인가?'

'영화의 특수촬영을 사용함으로써 의도적이든, 아니든 다큐멘터리는 믿을수 없다고 주장한 것인가?' 였다.


유성영화의 시대가 도래하자 점차. 자국에서 푸대접을 받은 베르토프는 우크라이나 지방의 스튜디오로 밀려났다. 그러나 또 다시 유성영화 작품중에서 가장 탁월한 작품  '열광 - 돈바스 교향악' 을 만들었고, '레닌의 세가지 노래' 등을 완성시킨다.


 에스피르 슈부는 여성영화인으로 주로, 외국영화에 자막작업 혹은 편집하는 일을 했다. 프리츠랑의 닥터 마부제, 백진주시리즈 등. 다큐멘터리를 장편영화의 소재로 활용할 욕심을 갖고 있었고, 뉴스영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로마노프왕조시대의 기록물을 발견해 '로마노프 왕조의 붕괴' 라는 영화를 내놓고 대박이 난다. 황실의 모습과 현실의 상황을 대조하여 보여주면서 반혁명적 기조를 갖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작품은 1912~1917의 시대적상황을 조리있게 구성했다.


1920년대에는 베르토프류 다큐멘터리가 많이 등장 한다.

 빅토르 투린 <투르크시브> 투르케스탄과 시베리아 사이 철도부설의 내용을 담은 장면 거대한 계획물을 잘 구성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거두는데 성공한다. 이 작품의 특징은 베르도프가 작품에 주로 사용하는 구어체해설을 곁들인 것이다.


저널리즘의 성격을 띤 걸작 다큐멘터리 영화 야코프 브료흐의 '상해의 기록'은  초기 소련의 외국관찰결과물로서, 생생한 현실의 소재를 사용하여 계급사회의 실태를 잘 묘사했다. 억압과 착취속에 무리지어 살고있는 중국인과 경비가 삼엄한 국제주거지역의 상황 등이 특징적으로 표현됐다.


미하일 카라토조스 <스바네티아에 소금을> 이라는 작품은 흑해, 카스피해 사이에 고립된 공동체사회 묘사하여, 단절과 격리로 특이한 문화와 함께 턱업이 부족한 소금 때문에 겪는 상상못할 고통을 영상으로 표현했다.

베르도프의 동생 카프만과, 일리야코팔린의 <모스크바>라는 작품은 모스크바의 생활을 흥미있게 그려냈다.


쿨레쇼프는 '볼셰비기 땅에서의 웨스트 씨의 기상천외한 모험' 이란 작품을 내 놓는다. 미국인 웨스트가 소련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상세히 그렸다.

에르물러의 '제국의 파편' 은  혁명전쟁에서 기억을 상실한 사람이 10년이 지난 후에 자신의 기억을 되살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두작품 모두 혁명으로 제건된 모스크바를 여행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있다.


베르토프의 작품은 1920년대 초 중반 선전물 역할을 했음은 분명한 사실이고, 소련정부도 이를 인정한다.

하지만, 베르토프는 일개 선전원이 아닌 뉴스영화에 전념한 보도기자로 생각하였고, 계속 뉴스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자신의 일이라 생각했다. 스탈린은 지속적으로 국제적 냉전과 고립의 불안 속에서 군비증가, 국가정책들 인민의 지지를 얻기위해 극영화와 다큐 모두에 강한 압력을 행사한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뉴스영화도 쇠퇴의 길을 걷고 다큐는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정리 -문창현

혁명의 정당성에 대한 뒷받침 - 뉴스영화

 

뉴스영화라는 개념이.. 정확하게 뭐죠? 


티비가 없으니까 돌아가는 시대상황을 기록해서 극장에 틀게되었다. 그래서 영화라는 개념이 뉴스에 붙은 것이다.


키노아이 이것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하고싶다.
사실 '키노아이', '기계에게 길을 양보하라', 라는 문구 등을 통해 처음 베르도프의 작업관에 대해 의심을 했었다. 카메라라는 기계일 뿐인데 기계라는 것에 너무 의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를 들면, 
선댄스 영화제에서 16시간동안 한 자리에 카메라를 두고 녹화를 해서 그 것을 16시간 동안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에 나오는 화면 외의 상황은 현실이 아닌가? 카메라가 비추는 현상이나, 어떤 모습 그 밖의 것들은 중요시하지 않아도 된다는말 같아서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 베르도프의 논조를 끝까지 읽고 나니까, 인간들이 사회 현상이나, 실제를 보는 눈은 어쩌면 상당히 주관적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생각을 할 때, 이 말이 좀 이해가 갔다. 카메라가 담아내는 장면과 현상의 어떤 것은 인간의 눈보다 조금은 더 세밀하고,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특징을 생각해보면 베르도프의 논조가 이해가 갈 것이다. 
흔히 우리가 영화 처음에 배울 때, 16프레임이라는 필름이 기록하고 , 보존하는 측면에서 카메라의 역할이 중요 한건 사실이듯이..


 저번시간에 내용과 좀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늘 궁금한 것이 있었다.


상황을 조작하면 다큐라고 할 수 있나? 
 

시네마베리떼, 다이렉트 논점이 이거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카메라 인식안하고 진실을 보일까?

다이렉트 시네마 - 카메라는 벽이된다. 예> 팬지와 담쟁이 - (계운경)

시네마베리떼 - 카메라맨, 감독이 폭탄을 던져야(상황을 만들어줘야) 급박한 상황속에서 카메라 인식못하고 상황에 몰두하여 진실이 드러난다.


마이클무어 - 성찰다큐멘터리를 만든다. 마이클이 주인공이고, 사회현상이나, 문제를 직접 체험하면서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조작된 다큐의 예를 들면 새가 날아가는 장면을 찍는 다고 했을 때 아무리 기다려도 새가 날아 가지 않아서 일부러 새를 쫓으면서 날아가는 장면을 찍었다고 했을 때 이건은 다큐가 맞나?
 

kbs환경스페셜에서 그랬던 적이 있어서 논란이 된 적이있다.

팬지와담쟁이라는 다큐를 봤다. 주인공들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습들이 조금 눈에 띄었다, 카메라너무 의식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사실 있는 그대로 현실을 진짜 그대로 표현하는게 진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다큐도 어차피 카메라맨이나 연출에 의해 여과가 된다. 트루먼쇼에서 처럼 리얼이지만 리얼이 아닌 것 같다. 또 그런 측면에서
 

몰래카메라는 다큐일까? 갑자기 든 생각이다.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이런 측면에서 애매모호하다고 생각한다. 제작자도 그렇고 보는사람도 그렇고 그럼 힘들지 않나. 다큐멘터리라는 정의나 영역이 정확하지 않으면,
 어디까지 조작을 할수 있는가.. 이것도 다큐, 저것도 다큐면... 생각을 해보면 의료문제 폐해를 찍는다고 했을 때 - 어떤 인물이 의료피해에 대해 이런 피해가 있었다는 상황을 제보해서, 감독이 취재하러 갔다. 의도했던 내용이 안나오면 나올 때까지 찍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제보에 따른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 의료피해는다큐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연기를 해야하는 것인가? 절대적인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거 같지만, 할수있는 한에서 다큐멘터리의 범주를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의 의도대로 만드는게 다큐멘터리인데 ..피해상황만 들었다고 해서 그게 사실이 아닌건 아니지 않나


이 개념을 여기에 붙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하이데거가 존재란 개념을 얘기할 때, 여기 실제로 컵이 있다하면, 그 컵을 그림으로 그리면 그림이 컵 자체는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컵이라 한다. 실제가 있으면 그것을 여러가지로 표현하게 되는데 그
 여러가지를 통해서 존재와, 실체를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실제 그 자체로 모든 사람들한테 받아들여질 수 없는데, 
어떤 사실이 있지만 결국 인식하는 건 일부분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보는 사람도 선택하는 것이고, 찍는 사람도 그의 주관에 의해 선택 해진 것이다. 한 부분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영화상영시간 길면 3시간인데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도 한정이 되어있다.

감독이 만들려는 의도가있을텐데 주관이랑 반한다고 해서 그건 조작이아니라, 주어진 시간 안에 얼마나 정확하게 감독의 뜻을 전할 수 있나는 고민 아래, 선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도 표현양식을 더 열어둬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큐멘터리에서 애니메이션이 있지 않나, 직접의도 해서 그린거니까 그것도 조작이라 할 것 인가?

전후맥락을 봤을 때 감독의 표현양식대로 현실을 담았을 때 그건,  현실이 아니지만 더 현실같다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것이 소설인데 , 그것도 작가에 의해서 나오는 이야기다.


현실을 보여주고 싶은거지 , 중립적인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

주관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생각한다.
객관성을 담보하고 , 프로파간다로 이용하는 것이 제일 이상적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다큐멘터리를 보는사람들도 그 것이 현실의 100%를 보여준다고 생각안한다. 취사선택한다.


지금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도 이런 논란을 의식해서 자기주관을 더 강화하기위해 객관성을 주장하고 있다.


대학교에서 다큐멘터리 교육도 문제다. 사실 다큐멘터리 제작에 객관적인건 없다, 하지만 객관적인걸 담보로 자신의 주관을 펼치면 된다 이렇게 가르쳐야 맞는 것인데, 학교교육에서는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이어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이게 맞는 교육인가? 실제로 찍어보면 객관성,, 어렵다. 


저널리즘에서도 절대적인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널리즘에서의 객관성은 정보원의 말을 " "로 그대로 인용하는 것으로 해서 담보된다고 인정되지만, 실제 인용구의 선택 자체도 선택하는 저널리스트의 주관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객관성이라 보기 힘들다.


'강,원래 프로젝트' 를 봤을 때, 정부의 정책에 반대의견을 보여주는데 '강,원래' 에서 힘을 갖는게 노동자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설득력을 갖는다. 일하는 업자들을 욕하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 이야기를 보여주니까 설득력을 갖는거 같았다.
 


이게 무슨말이냐 하면, '강, 원래' 영화안에서 4대강 사업 노동자들을 욕하고 이상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었다. 그 장면 만으론 노동자들이 무슨 죄를 짓고 있다는 것 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영화가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4대강을 생각하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인데, 그 두영화가 아귀가 맞으면서 사업의 문제에 대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4대강에 관한 뉴스를 봤을 때, 문제가 있다는 뉴스를 주로 봤다 4대강 사업의 좋은 점도 있을 텐데 왜 이렇게 안된다 잘못됐다 라고 만 하는지 이해가 잘 안갔다. 현실반영이라는 것, 중립성을 갖고 있어야할 뉴스에서 이거하면 나쁘다 이렇게 해야한다. 라는 뉴스를 봤을 때, 그런 뉴스를 보면 다큐에서 어떤 한 의견 쪽으로만 편향된다는 것이 조금 위험하지 않은가


그건 본인이 뉴스를 찾는 과정에서 편향된 취사선택을 한 것 같다. 4대강 사업을 다룬 뉴스에서 시민단체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인터뷰 내용이 나오는 것은 극히 드물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방송 3사에서는 정책의 잘된 점 , 홍보성 위주의 뉴스만 늘어 놓기 바쁘다. 그럼 이것이 객관적인 것인가? 적어도 독립미디어 활동하는 우리는 그런 의견들의 중립을 위해 반대쪽 의견을 모색하고 찾아서 문제점을 정당화 해야되다고 생각한다. 그런의미로 우리가 객관성 객관성하는거다. 
 


미국저널리즘 뉴스에서 어떤 사안을 보도 찬성의견, 반대의견이 있으면 똑같은 시간동안 방송을 해야된다는 규칙이 있었다. 그치만 이제는 저널리즘에서 뉴스보다 더 한 다큐에서는 어쩔수 없는 측면이라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 처럼, 뉴스에서 중도를 안지키는데 다큐를 만드는 사람이 중도를 지킬 필요가..있나..

힘 있는사람들은 자기얘기만 하는데 힘이 없는 사람들은 .. 늘 당하기만 하는 현실을 보고
어떻게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있나.. 


화가 ; 영상으로 그린 수채화


* 영화는 여러 분야의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 다른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재검토함

 - 영화에 대응하여 자신들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그들의 주의를 발전시킴

 - 영화의 여러 요소를 차용함

 - 선언문을 만들기도 함

 - 영화에 투신하는 사람도 나타남


* 1920년대에는 많은 화가들이 영화세계로 투신했다.

 - 화가들은 조각가, 음악가, 건축가, 사진작가들과 함께 시네클럽에 가입함 (최초의 클럽은 1924년 파리에 생겼다.)

 - 이들의 클럽은 영화가 상업성에 치우치는 것을 반대하고 영화가 인간의 의식을 중요하게 지배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술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함


* 화가들은 기존 영화 제작자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영화의 모티프를 찾았다.

 - 습관적인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함

 - 영화를 빛이 매체가 된 환상적인 합성물이라고 봄 

 - 예기치 않은 전환이 신비하고 역동적인 호화 예술로 생각

 - 화면의 질감과 빛의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짐


* 두 명의 화가 바이킹 에겔링과 한스 리히터가 공동으로 추상영화에 관한 실험을 시도하다.

 - 그들은 스크린 위에 푸가 형식을 도입해서 대위 선율을 표현하여 바흐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음 [푸가 = 악곡 형식의 하나. 둔주곡]

 - 처음에는 다큐멘터리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졌으나, 얼마 후에는 다큐멘터리와 결합함

 - 일상에서 자주 접촉하는 사물을 촬영하여 여러 장면들을 겹치거나 교차시키는 방법을 사용함

 - 그들은 베르토프의 영화 기법을 예술적으로 이끌어 감 

 - 현실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종합체로 창출하고자 했음


* 실험적 다큐멘터리 작품들

 - 리히터의 <경마 교향악> 마이브릿지와 추상주의의 결합이라 할 수 있음

 - 페르낭 레제와 더들리 머피의 <기계들의 발레> (이 작품은 크게 성공함)

 유명한 장면은 계단을 오르면서 청소하는 여인인데, 여인이 계단 꼭대기에 도달했다고 관객이 느낄 때쯤 다시 맨 아래계단을 청소하고 있는 식으로 편집됨 기계처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여인을 보여 줌으로써 인간이 기계로 전락한 현실을 암시하고 있는 철학적인 장면임

 - 장 팽르베의 <아귀>,<큰 가시고기>,<성게>,<해마>등 


* 일반 대중용 영화로도 각광받은 실험적 영화

 - 대부분 시네클럽에서 상영되었을 뿐이지만, 일반 대중용 영화로도 각광 받은 영화들도 있었음

 - 대표적인 인물은 월터 루트만

   - 루트만은 랑의 영화 <니벨룽겐>에서 악몽 장면을 만들기도 했음

   - 루트만이 연출하고 칼 프레운트가 촬영한 <베를린 : 대도시 교향악>은 루트만이 존경했던 

     에겔링, 베르토프, 에이젠스테인의 기법들이 혼합되어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었음

   - <베를린 : 대도시 교향악>은 철로를 따라 설치된 전화선의 흔들리는 모습, 스트로브스코프 양식        의 철교모습, 덜컹거리는 기차의 모습 등이 창밖의 전원 풍경에서 도시 풍경으로 또 공장 지대         풍경으로 변하는 장면과 잘 어울려 나타남

   - 영화는 기계가 매우 중요한 비중을 갖고 있기에 사람의 모습보다 기계가 중요히 다뤄지기도 함 

   - 전화벨 소리에 놀라는 원숭이나 설치며 뛰어나가는 개처럼 동물들을 출현시키기도 함 

   -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대도시에서 크게 흥행함


* 알베르토 카발칸티의 <오직 시간뿐>

 - 마치 할리우드의 상류 영화처럼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장면이 정지되어 한 사진이 되고 그 사진을 찢어 버리며 이 영화가 현실 생활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 

 - 계속 부자와 가난뱅이를 대비시키면서 부와 빈곤이 모두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라는 것을 표현함

 - 신문팔이 아가씨의 모습 위로 신문의 이름과 표제 화면을 보여줄 때나 화가들의 눈에 비친 파리의 모습을 보이는 장면에서 오버랩 기법을 사용함 

 - 카발칸티는 트릭을 주로 사용 했는데, 신사가 먹고 있는 스테이크 접시 속에 도살장 장면을 집어넣기도 함 

 

* 보리스 카프만과 장 뷔고의 <니스에 관하여>

 - 뷔고가 감독하고 보리스가 촬영한 이 영화에서, 뷔고는 보리스를 휠체어에 태워서 몰래 촬영하는 수법을 자주 씀 그렇게 그들은 사람들 몰래 영화를 찍을 수 있었고 또한 사람들이 촬영하고 있는 사실을 눈치 챌시 즉각 촬영을 중지했음 그렇게 뷔고는 개인적인 영화를 제작하고 싶어 함

 -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원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 루마니아 황실의 열쇠 구멍이라도 뚫고 들어가서 황태자가 잠옷 차림으로 일어나는 모습을 찍을 수 있기 위해 의자 밑에 몸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야위고 작아져야 한다.’라고 말하며 제작자가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 강조함

 - 영화는 <베를린 : 대도시 교향악>의 기법도 사용하였는데, 이 기법으로 어떤 휴양객도 내일은 단지 쓰레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허무주의를 표현함


* 요리스 이벤스의 <다리>, <비>

 - 루트만, 에겔링, 리히터 등이 보내주는 추상파 영화에 영향을 받아서 추상파 영향의 경향이 드러난다. 

 - <다리>는 로테르담의 철교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복합적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었음

 - 당시 다리는 올리고 내리는 작동이 가능했는데, 이러한 다리의 이동에 연관되는 질주하는 열차, 증기선, 기선 굴뚝으로부터 퍼져 나오는 연기, 물결치는 파도, 다리 너머로 보이는 시가지의 상황 등의 움직임에 중점을 두고 촬영함 

 - 이벤스는 점심시간마다 철교에 올라가 카메라의 각도를 맞추어 보면서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을수 있다.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그림자의 운동, 케이블 선이 움직이다가 멈추었을 때의 떨림 한마디로 얘기해서 모든 사물과 동작의 작용과 반작용의 모습들.....” 이라고 말하기도 함

 - 이벤스는 <다리> 이후에 <비>라는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암스테라담에 내리는 비를 묘사한 작품이다.

 - <비>는 강하게 혹은 약하게 떨어지는 비와 웅덩이로, 도랑으로 흘러드는 비의 모습, 그리고 창과 우산, 짐마차, 자동차등에 쏟아지는 비를 아름답고 정확하게 영상화 했음

 - 관객들은 ‘비’라는 렌즈를 통하여 대도시의 모습을 바라보게 됨

 - 비슷한 유형의 영화들 

   -맨 레이의 <에마크 바키아>, 편집한 샤를르 듀크크레이르의 <권투 시합>, 랄프 스타이너의 <H2O>, 빌프리드 바세의 <비텐베르크 광장의 상점>, 유겐 데슬로의 <전등불의 밤>


* 실험적 영상의 다큐멘터리의 막이 내려지다.

 - 무성 영화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유성 영화의 시대가 등장하면서 실험적 다큐멘터리들은 잊혀져  갔다. 이렇게 세계 영화사는 1920년대의 실험정신영화의 시대를 지나쳐 갔다.


정리 - 한동혁


화가, 영화를 말하다.

기존예술가들이 영화가 등장한지 얼마 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예술의 장르를 발전시키려고 했다는 것이 포인트다.


요리스이벤스 감독의 '비' 라는 작품을 봤는데 시적다큐라고 하더라 ,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이런 느낌을 줄 수도 있구나 싶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든다. 다큐멘터리도 진짜 장르가 다양하다 이미 우리가 봤듯이 책에도 그렇게 적혀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이 눈을 가리고 찍고, 귀를 막고 찍고 , 감독도 새로운 시도를 하면 좋지 않을까?
뿐만아니라, 관객들도 같은 영화를 눈을 가리고 보고, 눈을 뜨고 보고 뭐 이런식으로 만드는 사람, 보는 사람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장애인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위험한 시도인거 같다.


예술영화라 불리는 이런 장르의 영화 솔직히 어렵다.

플래허티는 그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이 그들의 삶을 알았으면, 하는 의미전달이 있는데
 

비오는 거리를 계속 보여주면서, 다큐멘터리라 하는 이런건 미학적인 느낌 밖에 없는 것 같아서 , 다큐멘터리가 미학적인 모습만 보여줘서 아 이런것도 다큐멘터리인가? 하는 거부감이 많이 들었다. 


예술영화라 불리는 미학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다큐나 영화를 평론가들은 극찬한다. 대중들은 의미도 모르는데...대중의 취향과 평론가들의 취향이 같을수 없으니까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미학이란것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미학이라는게 아름다운 것보다 미학이 뭔지 
몰라서 작품을 봤을 때 잘 이해안가고, 모르는게 맞는 건지도 의심되고, 참 어려운 것 같다. 


미학이란것, 예술 이라는 것, 이것은 단순한 지식체계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인간 개인이 느낀 것들을 미술작품을 통해 깨닫게 하는 것 같다.
 예술을 통해 뭔가 내 삶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는가 하는 길을 약간 제공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예술의 목적을 내 나름대로 정의한건데... 


미학이란게 이성보다 감성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절대적인 미는 없는것 같다.

유명한 작품을 볼때 어릴때 봤어도
 이해안가고, 다 큰 어른이 되서 봐도 이해안가고 하는 작품들을 보면, 작가가 정말 의도적으로 어렵게만든다는 느낌을 받는다. 차지나가는 것 이런거만 보여주는 다큐에서 무얼 느끼란 말인가? 


제작자가 의도했지만 많은 대중이 이해를 못했다고 해서 그게 의미가 없다고 할 수 는 없는 것 같다. 절대미라는게 있을까? 음악 같은 경우, 대단한 음악가들 보면 어릴때 놀라운 감각을 보여주었고 그 음악들인 현대에서 칭송받는다.


하긴 작가들의 명성에서 작품이 좋고 나쁨이 또 평가 된다. 솔직히 누가 봐도 한 번에 이해 못한 그림을 그렸는데.. 내가 개발새발 그린것과,  작가가 개발새발그린거를 놓고 , 사람들은 작가의 그림을 보고 더 선호 할것이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각자 그들의 주관대로 작품의 의미가 있을텐데 대중과 소통하지 못한다 개인들과 소통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작품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이라는게 솔직히 쉬운 건 아니지만, 그 작가의 심정이나, 작품을 이해하려고 하며, 내 삶을 비춰보고  계속들여다보고 노력하면 언제가는 알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번 장은, 정리와 토론내용을 한 번에 실었습니다.
읽기 힘드셨죠? ㅠ

다음 엔 좀 더 나은 내용이 정리 되길 바라며, 오늘도 죄송한 마음 갖고,
정리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