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게임 (2001) / 감독 경순, 최하동하 / 다큐멘터리 / 90분
시놉시스
" 태초에 애국이 있었다. 그 영생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누군가는 민족과 국가란 공동체에서 얻은 신분과 부귀를 영원히 그의 자손에게 대물림하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민족과 국가란 공동체의 당위성과 개인의 가치를 초월하는 그 존엄성을 끝도 없이 창조하고 되뇌어야만 한다. 태내에서부터 세뇌된 모든 이들의 삶과 행동에서 영원히 자기복제되는 순환의 고리... 영생하는 애국의 원동력은 그 순환의 고리에서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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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18會動은 경순, 최하동하 감독의 애국자게임보고 토론했습니다.
참석자 - 문창현, 한동혁, 박배일 , 안명환, 허주영, 김현아
다큐멘터리 '애국자게임'은 ,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름아래 , 태초부터 애국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 태초부터 있었다는 애국이라는 것이 시대가 변하고 역사가 다시 쓰이는 긴 시간동안 여전히 그대로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붙게 되는데, 어떻게 이것이 영생에 가까운 원동력을 갖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과 함께 애국을 옹호하기도 하고 , 이것을 가볍게 무시하기도 하는 양쪽의 등장인물들을 극명하게 대립시키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장면 중에 감독이 알을 낳는 부분이 있다. 이 장면은,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을 또 생산해 내는 것처럼 보였다. 애국이라는 이름 아래 , 좌 우로 나뉘지만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을 전하는 과정에 애국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게 좌파든 우파든 간에... 하지만 이 말은 좌파든 우파든 자기 세력을 늘이기 위해서 애국을 활용하고 있다. 라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데 여기에서 논란지점이 있다. 애국을 활용하지 않는 좌파도 있다. 그렇게 영화가 보였던 것은 새로운 해석이긴 하지만 조금 잘 못 이해한 부분인 것 같다. '애국자 게임'에서 좌파로 보이는 인물들은 애국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민족주의가 올바른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좌파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없어져야 하고, 이 민족주의라는 것을 자본주의 안에서 보수, 극우파들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논리를 알리는 용도로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있다.
한편으로는 '애국자 게임'을 보면 국민들이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감옥가는 사람들은 변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만 간다. 지금 현상을 유지하자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가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하는 나는 '사람은 늘 성장하고 , 변화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때문에 영화전반적으로 등장하는 조선일보의 존재는 애국이라는 것을 잘 이용해서 어떻게든 보수를 유지하고 , 이익집단의 이익을 보전하려는데 이러한 의도를 잘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옹호하고 있는 국민들의 모습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영화가 10년전 작품)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이어져 오는 것에 대해 답답함이 느껴지고 바뀌지 않는 이런 사상과, 현상들의 뿌리가 너무 깊이 박혀있어서 변화를 이야기하고, 그 변화를 믿고 지금의 현실을 바꿔보자고 하는 목소리에 한 표를 던지는 나로써는 이런 영화를 맞닥뜨렸을 때 현실이 버겁고 막막하게 만 느껴지고 이 영화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바로 답답한 현실을 검증해주는 것 같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함이 앞섰다.
또, 영화에 나오는 임지현교수가 체게바라에 관한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한 사실을 두고 감독은 체게바라 뒤에 박정희가 있다는 문구를 비춘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관점으로 토론이 엇갈렸다. 한 가지는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거대언론을 읽는 사람들이 국민의 대부분인데 우리가 조중동이 싫다고 해서 그 언론을 읽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것이 더 문제가 되지 않는가 하는 의견, 그러니까 영화 안에서 임지현교수의 의견은 조선일보 독자가 많기 때문에 체게바라를 조선일보를 통해서 이야기 한다면 많은 독자들이 체게바라의 의식을 인식할 것이고 그러면 체게바라의 사상과 행동들에 대해 학습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다. 또 하나의 의견은 감독이 말하는 체게바라 뒤에 박정희가 있다는 것, 이 이야기는 는 임지현교수가 말한 체게바라의 사상이 조선일보에 기고된다면 조선일보는 기고자의 의도대로 체게바라의 사상을 독자들에게 학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체게바라의 사상이 조선일보의 사상인 것처럼 보여지며 조선일보는 임지현교수의 기고를 철저하게 조선일보화 하여 독자들을 더 조선일보에 옹호하게 만들 것이라는 의견이다. 즉, 임지현 교수의 생각은 힘이 없어지고 조선일보의 거대화에 힘을 보태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논란의 지점은 충분하다. 임지현 교수의 말처럼 체게바라를 조선일보에 기고 한다고 해도 , 변화시킬 수 없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확인했다. 그래서 우리는 밖에서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지켜봐야 한다. 안에서 변화시킬 필요가 없다. 이런 의견이 사실 극단적이고 폭력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된다. 이 이야기도 맞고, 저 이야기도 맞다면 과연 세상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생각해봐야할지점이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임지현 교수에게 감독은 박정희 뒤에 체게바라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봤나고 던지는 질문에 임지현 교수가 머뭇거리며 그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것 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의 모순을 계속적으로 드러내는 영화다. 진보든 보수는 자신의 주장을 계속적으로 내 세우는데 , 그 주장안에서 모순이 계속 드러난다. 결국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진보도 , 제대로 된 보수도 없다고 드러내는 것 같다. 즉, 이 영화를 만드는 나(감독)도 모순의 지점에 서있다. 조선일보를 비판하고, 보수를 비판하지만 영화의 말미에 조선일보를 배달하는 감독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뒤에도 박정희가 있을 수 도 있다는 경각심을 일으키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사실 야구장에서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하면서 롯데! 롯데! 외치는데 이상한 감정이 드는 것은, 내가 롯데를 외침으로써 롯데기업을 옹호하는 것 같고 더 자본주의를 외치는 것 같아서 어느새 그렇게 외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반감이 드는 것을 보면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나는 보수와 자본을 옹호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경각심이 드는 이유도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한국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세밀하게 그 안의 감성과 속성을 들여다 봐야한다. 이 영화가 게임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있는 이유와 영화 장면에 게임하는 장면을 보여준 것은 결국 소프트웨어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대한민국의 구조를 얘기하는 것. 그 안에 들어있는 소프트웨어들을 다층적으로 만들고 , 그것을 어떻게 조종을 하느냐에 따라 애국이라는 것이 국민들 마음속에서 커지고 작아질 수 있다는 우리의 사회구조를 인식해야 된다.
영화를 다 보고 문득 든 생각이다. 과연 나는 애국을 두고 볼때, 말하지 않음으로써 애국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의문이 들었다. 영화에서 처럼 좌파는 애국주의자가 아니다 애국이 싫다 하면서 애국에 대한 의식을 내세우지도 , 말하지도 않는다. 그 반면에 애국을 옹호하는 보수 측, 애국주의자들은 더더욱 민족주의와 애국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애국을 위해 노력하는데 그 반대측에서는 애국을 말하지않고, 애국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내지 않고, 반대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는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애국주의를 더 공고히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모순이다 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야기적인 측면 외에도 영화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이 영화는 인물을 드러내는 방식이 감독의 주관적인 감정이 너무 개입되어 있다. 좌든 우든 그 사람의 논리를 마구 깨버리고 반대되는 의견을 극명하게 대립시킴으로써 앞에 말한 인물을 희화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면은 등장인물들에게 폭력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애국자게임이라는 말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표현방식 또한 내가 내 맘대로 이 게임을 조종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바로 게임의 주도권은 게임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나로써 그 게임을 작동시키는 사람이 다큐멘터리 감독인데도 인물들이 희화화 될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지난 18회동 사진.
옷이 긴거보니 봄이었던 것 같아요~ ^^
▶ 18회동, 유일 청소년 한동혁군!
▶ 18회동, 김현아 허주영.
▶ 18회동, 좌부터 문대표, 동혁군, 일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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