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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오지 ~ing

<잔인한 계절>, 서울인권영화제 인터뷰

서울인권영화제 인터뷰했습니다.
서면 인터뷰라 어색했지만 잘 정리해주신 것 같네요.  
서울인권영화제는 
2011년 5월 19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개막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국내작 소개

<잔인한 계절>

잔인한 계절 Cruel Season 
박배일 Park Bae-il 
한국 Korea | 2010 | 다큐 | 60분 | HDV | 컬러 | 16:9

해가 지고 번쩍거리는 불빛과 소음이 잦아들면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가 토해놓은 오물들을 치우는 문전수거 환경미화원. 그들은 쓰레기를 뒤져 살아가는 '너구리'라 자조하지만, 이들은 땀 흘리며 노동하는 우리 자신이다.

박배일 감독 인터뷰

(활동가들이 부산으로 박배일 감독님을 직접 만나러 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편집자)


감독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부산의 오지필름이라는 곳에서 미디어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박배일입니다. 대학 들어와서 쭉 극영화 감독을 꿈꾸며 단편영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26살 때 ‘극’을 잘 만드는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자신감을 잃고,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카메라를 들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그러한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제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제작한 첫 다큐멘터리가 가난이 대물림되는 현실을 다룬 <그들만의 크리스마스>이었습니다. 혹독한 현실을 살아가는 분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제가 기존에 세상을 보던 방식과 다르게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카메라를 통해 베일이 드리워진 세상의 참모습을 담아낼 수 있다면 이 일을 계속할 가치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갖고 지금껏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잔인한 계절>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잔인한 계절>이란 제목은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인 <잔인한 사월>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잔인한 계절>은 문전 수거원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결국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가치’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이 사회가 중요시하는 가치는 경쟁과 그것에서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지속적인 경쟁과 승자만이 그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이 지속되면 될수록 우리는 잔인한 계절로 빠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제목을 붙였습니다.


영화에서 눈에 띄는 장면이나 소리들이 있었습니다. 일단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많이, 또 다양하게 나옵니다. 중간 중간 라디오 소리도 삽입되어 있고요. 동물들이라거나 농촌에서의 포클레인 등을 보여주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시기도 했는데 이런 장면이나 소리들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잔인한 계절>은 가치에 대해 묻는 영화입니다. 사라지고, 새겨진 것들은 어떤 이가 어떠한 가치 판단에 의해서 선택 것이냐? 환경미화원들처럼 왜 그들은 스스로의 삶과 노동의 의미를 정면으로 내세우지 못하고, 없는 이들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포클레인이 삽질하는 곳은 4대강 사업 현장입니다. 지구를 든 동상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조형물이죠. 그 외에 우리 곁에서 사라진 존재들, 은근슬쩍 새겨진 것들이 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지 툭 던져놓은 겁니다. 그 의미들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모르겠지만요. 
환경미화원은 어두운 밤에 도시가 버려놓은 토사물을 치워 깨끗한 아침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분들에게서 나는 냄새에 코를 막고, 경멸의 눈총을 보냅니다. 환경미화원들은 우리와 공존하지만 드러나선 안 될 존재들로 전락했습니다. 전 거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이 가치가 있는지, 아름다운 거리가 가치가 있는지를 처음으로 생각해봤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삐까번쩍에 대한 가치를 한 번 더 생각해보자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잡아먹혔을 고양이, 이젠 철거 된 영도다리, BIFF거리의 페이스페인팅, 4대강 사업으로 할 일을 잃은 골재채취 선박 등을 삽입한 겁니다.


구청을 상대로 투쟁하시던 분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노동조합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고, 실제로 개선된 것들이 있는지요?


이분들의 문제는 법의 제·개정과 같은 큰 틀에 의하지 않더라도 구청이 의지를 가지고 변화시키려 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작년 6.2 지방 선거 당시 진보당 구의원이(부산에서 진보당이라면 민주당까지 포함되는 겁니다.) 당선된 곳에서는 개선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업장이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구청이 청소업을 직영으로 전환하려는 노력까지 보이고 있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개선은 극히 일부분에서만 나타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자신들을 너구리라고 소개하신 분이 고용된 사업장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이유로 구청을 통해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습니다.


미화원 출신이자 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으셨던 홍희덕 국회의원이 국회에 입성한 뒤 달라진 점이 있나요?


환경미화원 관련된 사안을 보면 몇 년 전의 내용이나 현재의 내용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총체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므로 노동조합도 구청의 조례제정을 통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에 담은 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전 노동자, 여성, 장애인이 자기 권리를 누리며 사는 세상이 그나마 괜찮은 세상이라 믿고, 그 맥락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에는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제 활동 중에 시민들이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활동이 있습니다. 그중에 라디오시민세상이라는 프로그램에 문전수거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찾아오셨습니다. 아무리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도 노동자가 씻을 권리조차 없는 현실에 대한 사연을 듣고 저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에게 알리는 작업을 하겠다고 그 자리서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활용 할 수 있는 매체인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을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영상을 만들어서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알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영화작업이었고, 이분들의 투쟁에 도움 되는 영화를 만들자 싶어 급하게 영화를 만들었던 것입니다.(퍼블릭액세스는 미디어에 대한 대중의 참여를 주장하는 운동이다. 방송국 등의 언론사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미디어에서 탈피하여, 수동적인 시청자에서 능동적인 생산자로 변모하자는 운동이다.-편집자)


최근 몇몇 대학교들에서 청소 노동자 문제에 관한 교섭이 타결되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분명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비단 청소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의 문제이고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비정규직 고용 문제가 홍대 청소노동자들처럼 이슈화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홍대 청소노동자 문제 해결 과정을 들여다보면 연대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지만 ‘연대’라는 말은 너무 불안정한 것 같습니다. 연대하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는 미안함도 서로를 가르는 것 같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행동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방법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지만 그 믿음에 살짝 금이 가기도 하고……. 일단 저는 이런 고민들을 하는 사람들과 대화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독님이 하고 계시는 활동이 지역 미디어 운동의 일환이기도 한데요, 지역 미디어 운동에 대해서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지방자치 시대에도 미디어 의제 대부분은 수도권 아니, 서울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미디어의 의제가 수도권과 서울에 집중되다 보니,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나와 내 주변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미디어 운동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서울의 변화가 대안이 될 수 없는 대한민국이 된 것 같습니다. 나와 내 주변에서 그리고 지역에서 대안을 찾고, 실험하고, 실천하는 게 궁극적으론 변화를 위한 답인 것 같아요. 그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 미디어고, 저는 그런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부산에서 미디어 운동하시는 분들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감독님이 이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를, 나아가 정치적인 해결을 원하시는 것으로 느꼈습니다. 만약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 다음 작품의 제작은 어떤 방향으로 하고 싶으신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문제는 환경미화원들만의 문제가 아닌, 결국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겠죠. 계속해서 이 문제들을 다룰 예정이고,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구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가? 노동의 가치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대해 보여주고 싶습니다.


인권영화제와 소식지 <울림>에 지지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인권영화제에 꼭 가고 싶었어요. 다른 영화제보다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니까요. 당연히 많은 자극과 가르침을 받을 거라 예상됩니다. 잔인한 사월이 지나 훈훈한 바람이 부는 대학로에서, 잔인한 계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함께 있다, 함께 한다, 결국 변할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 있기 때문에 희망의 자리가 될 것 같아요. 인권영화제가 외부의 압박이 아닌,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사라지는 그날까지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길 빌어봅니다. 그 통로로 <울림>이 있겠죠. 늘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청춘의 거리 대학로에서 삶과 영화를 곱씹으며 소주 한 잔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