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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오지 ~ing

<기프실,검은물속으로>는 지금...

두서없는 글을 시작한다.

2011년 오지필름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4대강사업반대 미디어활동 ,원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전국 미디어 활동가들이 모여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미디어로 풀어내는 프로젝트, 나는 그때 일개감독의 프로젝트에 연출부로 함께 했었다.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낙동강에 세워지는 몇 개의 보를 찾아 촬영하고 우애우애 출연까지 했었다. 그 순간 까지도 많은 고민들을 하지 못했고,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날, 어느 건물 에스컬레이터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선배, 저희 할머니 댁이 영주댐 때문에 수몰되는데 ... ”

시작은 이 말 한마디.

5년 전, 말 한마디 큰 고민없이 뱉었다가 아직도 깊은 숲속을 헤매고 있다.

영주댐으로 수몰되는 할머니 집을 카메라에 담자고 마음먹고

사라지는 것들, 고향의 봄, 놈이, 기프실이 되기까지 오지인 들을 참 많이도 괴롭혔다.

 

집중하지 않고, 나아가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심스러운 나를 만나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숨고 피하기만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반복하던 회의 속에서 얼마 전 들었던

니가 니 작품에 애정이 없는데 우리가 뭐 어떻게 할거고?”

이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나는 그동안 내 작품을 애정하지도 않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걸어왔던 건가? 지난 시간들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그동안 내 작품에 애정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사실 애정이 식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때는 힘내자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기록해온 영상들을 보며 힘을 얻다가도 금세 의지는 꺾이고 스텝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눈물바람으로 혹은 한숨과 부끄러움으로 작품회의를 마쳤던 지난 시간들을 이제는 만회하고 싶다. 더 이상 숨고, 피하는 나를 만나지 않으면 좋겠다숨으면 안 된다. 다시 모니터 앞에서 마음을 잡았다.

 

 

▶ 할머니집이 부서지는 장면이다. 이장면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장소'는 나의 정체성을 유지할수있는 기억의 집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내 정체성의 한 부분도 저기 어딘가에 있었다. 그 기억의 집이 눈앞에서 무너지고, 부서지는 장면이 슬펐다.

 

 

영주댐으로 수몰되는 할머니 집을 기록하면서 죽음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눈으로 목격했다. 나는 이 죽음과 사라지는 것들을 그동안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이 영화를 통해서 고백하려 한다. 그 고백을 통해서 앞으로 나는 어떻게 기억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수많은 사라짐들을 어떻게 의미짓고 내 삶 안에서 이어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할 것 이다. 쉽지 않은 일이고, 또 형체가 없는 것 같은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하루하루를 그렇게 형체 없는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문창현이라는 사람의 현재라는 이야기다.

변할 듯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내 자신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이 오지필름의 활동이고, 작품을 통해서 그것들을 진전시켜가야 한다는 것을 믿고 싶다. 내가 기록해왔던 순간들에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던 그때를 떠올리면서 오늘도 한걸음 걸어가려고 한다. 촬영해온 영상들을 보면 한숨만 푹푹 쉬게 되지만은 우야둥둥 (사라지는 것들, 고향의 봄, 놈이에서)기프실이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여전히 작품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올해가 가기 전에는 그 실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쁜 소식도 전한다.

두서없는 글을 이제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