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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오지 ~ing

<구미의 딸들>을 시작하며.


모든 생각과 행동을 더디고 무겁게 만들었던 지독한 여름이 간다. 

더위를 많이 타긴 하지만 한여름의 시작에 태어난 나인지라 여름은 설레고 기다려지는 계절이었는데, 서른의 여름은 나조차도 원인을 모를 무기력과 불안 그리고 우울함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나날 속 어느 날, 나는 얼떨결에(부끄럽지만 솔직하게 고백하련다.)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내 고향은 경북 구미다. 

철 모를 적(지금도 철이 없긴 하다만) 가수’god’의 빠순이를 자청하던 때엔 김태우와 장우혁을 배출한 도시라고 자랑스럽게 떠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박근혜의 아버지이자 우리나라의 현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 사람, ‘박정희의 고향’이라고 소개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늘 현 대통령인 박근혜와 그의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분노 혹은 부끄러움이 베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게도 같은 고향사람을 긍정이든 부정이든 중시 여기는 지연주의 의식이 짙었던 것이다. 언제나 내 고향 구미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유독 눈에 잘 띄었고, 그 와중에 흘러가는 타임라인 속에서 구미시에 대한 기사가 눈을 잡아 끌었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 사업’에 관한 것이었다. 박정희가 태어난지 100년이 지났다는 사실이 아득하게 다가왔다. 100년이면 강산이 10번도 바뀔 수 있는 시간인데, 그는 언제나 멀지 않은 시간 속에서 우리 곁에 있었던 사람이란 생각이 스쳤다. 나는 잠시 오싹함을 느꼈다. 



기사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구미시는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 사업에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구미참여연대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사업의 비효율성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지만, 그에 못지 않게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사람들도 가득했다. 놀라웠다. 도대체 이 사람들에게 박정희는 어느 정도 크기의 인물인걸까.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하긴 나 역시 구미에서 살았던 20년의 시간동안 그를 우리나라를 이끌고 일으킨 대단한 인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내가 직접 인지할 수 있는 부분뿐만 아니라 느끼지 못하는 수많은 부분에서 그가 만들어놓은 어떤 것들에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기사 내용을 일개감독과 문대표와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냥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 공유하면서 욕이나 한바가지 해줄 생각이었다. 당시 내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모든 시작은 이 사진에서부터.... (애증의? 사진) 이 사진이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 되어버렸다! ㅠ.ㅠ 이 때만 해도 앞날을 모르고 웃던 나... ㅋㅋㅋ




정신을 차렸을 때 대화는 내가 예상한 것과는 많이 다르개 전개되고 있었다. 일개감독과 문대표는 내가 말해준 기사의 내용에 놀라워하며 자연스럽게 영화로서의 가능성을 따지며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그때까진 그냥 가벼운 기록물로 남겨두는 정도로 괜찮겠다 여겼다. 그리고 역사적....인 순간...! 일개감독은 나와 문대표를 함께 찍은 사진에 시뻘건 글씨를 새겨 sns에 업로드하고는 영화의 시작을 선언해버렸다...! 그렇게 <구미의 딸>이 시작됐다. 그리고 나의 고민도 시작됐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내가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가?’

나는 자신이 없었다. 일개감독이 올린 사진속에서 웃고 있는 내 얼굴을 긁어버리고  싶을만큼. 나를 설득하려는 일개감독과 문대표의 이야기가 귓바퀴에서 팽팽 튕겨나갈만큼 나는 두려웠다. 사실 그 두려움의 원인이 뭔지 지금도 정확하게 파악이 안된다. 그냥 당시 온전치 못했던 몸뚱이가 오만 생각을 부정적으로 몰고 간건지, 그래서 모든게 싫었던 건지... 많은 생각으로부터 자꾸 도망치려고만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부정할 수 없는 마음의 소리가 있었다. 이 기록이 꽤 의미있고 가치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는. 


미련한 나는 꽤 긴 시간의 고민 후에, 작업을 시작해보기로 결심했다. 이미 일개감독과 문대표는 준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텐데, 내가 우물쭈물하는 시간이 꽤 길어졌다. 나를 다그치치 않고 설득하며 기다려준 일개감독과 문대표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나에게)꽤나 유난스럽고 요란하게 시작된 <구미의 딸들>은 이제 막 첫걸음을 떼고 있다. 처음 영화에 대해 아이디어를 쏟아낼 때, 100주년 기념사업의 현장을 쫓아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와 반응을 들어보자고 입을 모았었다. 아직 기획 초기단계라 어떻게 바뀌어갈진 모르지만,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박정희의 그림자를 밟아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 


구미에서 20년을 살아온 나와 문대표가 함께 연출을 맡아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일개감독은 언제나 옆에서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줄 것이고, 지금은 밝힐 수 없지만 영화의 길잡이가 되어줄 pd님도 함께한다. 나를 믿고, 이들을 믿고 천천히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보고 싶다. 그 끝이 어떤 모습일지 사실 아직도 좀 두렵지만 한편으론 기대가 되기도 한다. 나와 우리의 많은 부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그를 찾아다니다 보면,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점검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 대해서도. 그러다 보면 아주 조금이라도 더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쓰다보니 좀 거창하다. 히히. 그리고 <구미의 딸들>은 나의 첫 다큐멘터리 연출작이기도 하니까(마지막 연출작이 될 수도 있다. ㅋㅋㅋ) 이 작업을 하면서 내 스스로가 가진 다큐멘터리와 영화에 대한 생각도 다져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이 길어졌다.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내 마음을 감추거나 속이지 않고 작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많이 부끄럽지만 이런 시작도 있다. 하하. 그래도 지금은 응원이 더 필요하긴 하다. 소심한 나에게 응원을 달라고 고백하는 글이기도 하다. 유람을 떠날 그 날을 위해 천천히 짐을 꾸려가고 있다. 재미있고 유쾌하게 작업하고 싶다. 그리고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찐~하고 뜨겁게? 기념하고 싶다. ㅋㅋㅋ <구미의 딸들>의 유랑기, 오지필름 유랑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 여정에 함께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