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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 : 소성리가 품고 있는 삶들에 대하여 _ 한동혁

<소성리> : 소성리가 품고 있는 삶들에 대하여

 

 시작하고 꽤 오랫동안, 사드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지금 현재 소성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외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어쩌면 그저 시골 마을의 풍경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편안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 할지도 모르겠다. 바꿔 말해 지금 대한민국이, 성주가, 그리고 소성리가 사드배치로 인해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들의 입장에선, 도대체 사드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 나오는지 의문을 품으며 영화의 초반부를 보게 될 지도 모른다.

 

 러닝타임의 약 30분이 지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사드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는, 투쟁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들에서 우리가 자주 보아온 이미지인 경찰과의 대치 상황을 굳이 오랫동안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잠시 투쟁 현장을 보여주다가도 금세 시선을 돌려 다시 마을로 돌아와 버린다. 그리곤 다시 마을의 풍경들에 집중한다. 방금 보여 졌던 투쟁 상황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기의 긴장은, 투쟁 이후 자신의 감정을 털어 놓는 주민들의 음성에 의해 차분하게 정리 된다.  


 


 언젠가 사석에서 박배일 감독에게 물은 적이 있다. 영화 <소성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고. 박배일 감독의 감독은 이러했다. ‘처음에 미디어 운동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소성리를 찾았을 때만 해도 영화를 찍을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성리에 들어가 그 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 내가 영화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라고.

 

 말하자면, 박배일 감독이 영화 <소성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건 사드도, 운동도, 투쟁도 아닌 소성리라는 마을 자체였다. 소성리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들의 역사가 있고, 그 사람들이 한평생을 함께 살아온 자연이 있었다. 소성리는 삶을 담고 있는 마을이었다. 실제로 영화 <소성리>가 담고 있는 가장 많은 이미지는 소성리의 풍경들이다. 논과 밭. 나무와 숲. 오래된 집들. 오래된 길들. 그리고 그 안에서 느리게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이 노인인 주민들. 이 순간 영화는 어떤 개입도 하지 않고 카메라를 그저 삼각대에 올려놓은 채 거리를 두고 그 풍경들을 바라보기만 한다. 이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 것처럼 말이다.



 사드의 필요성, 안보, 그리고 전쟁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들이 우리에게 시시각각 도착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사드가 배치되는 작은 마을에 대해서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영화 <소성리>는 이 순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소성리가 갖고 있는 풍경에 대해서, 소성리의 나무들과 풀벌레들이 내는 소리에 대해서,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대해서, 소성리 주민들이 갖고 있는 이 곳의 기억들에 대해서. 결국 <소성리>가 풍경을 보여주는 것은 이것을 호소하기 위함이다. 소성리 주민들의 삶도 우리의 삶이 중요한 것처럼 똑같이 중요하다고. 이 순간까지 도착하고 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우리 스스로에게 생겨난다. 사드로 인해 이 마을이, 이 마을의 삶들이 강제적으로 중단될 위기해 처한다면, 우리는 이곳에 사드가 들어오는 것을 쉽게 허락 할 수 있을까라고.

 

 조금의 스포일러.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며 가장 강한 감정이 생겼던 장면은, 투쟁 현장에서 주민들과 활동가들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누군가들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 할머니들의 얼굴을 영화가 보여줄 때였다. ‘너희 같은 종북 빨갱이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 ‘너희 가족들도 북한군에게 죽어봐야 정신 차린다.’ 등의 폭언이 한바탕 지나간 이후, 영화는 문득 카메라를 하늘에 띄운 뒤 천천히 소성리의 전경을 살핀다. 그리고 그 위로 소성리에서 6.25 전쟁을 통과해온 할머니들의 기억들이 포개어 진다. 할머니들도 분단과 레드 콤플렉스의 시간들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것이다.

 

 이 순간, 폭언을 쏟아냈던 이들과 같은 시간을 통과 했지만 다른 결말에 도착한 소성리 할머니들의 삶이 아프도록 깊게 이해됐다. 문득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것은 소성리의 풍경이면서 동시에 소성리가 갖고 있는 아픔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은 소성리 뿐 아니라, 힘없고 저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국가 폭력의 대상이 되는 대한민국의 모든 작은 마을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_ 글 한동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