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소식지(제 95호)에 생탁노조에 대한 짧은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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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남도민일보
생탁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된 건 부산 MBC 라디오 프로그램 <라디오시민세상>을 통해서였다. 내 아버지 또래의 아저씨 두 분이 빨간 조끼를 입고 앉아, 방송 녹음을 위해 원고가 뚫어져라 살피더 모습이 기억 속에 선명하다. 수려한 말솜씨에 유쾌함을 잃지 않던 두 분의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라디오 방송이 나간 후 신문이나 tv에 생탁과 관련된 뉴스가 있나 찾아보았지만 인터넷 한 페이지를 다 채우지 못하는 정도의 기사만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나마도 너무 간략해서 기사만으로는 상황파악이 어려웠다. 언론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주목했다면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대신했겠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야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으로 오지필름에서 짧은 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생탁 노동조합 조합원들을 만나기 위해 생탁 장림 공장을 찾았다. 얼마 전 지었다는 으리으리한 사옥 앞으로 조합원들의 천막이 서 있었다.
소비자의 좋은 친구라 말하며 부산의 대표 막걸리로 자리 잡은 막걸리 '생탁'은 정작 생탁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파업을 시작한 이유는 '해도 해도 너무 해서'였다. 우연히 보게 된 사규집에 생전 듣도 보도 못했던 연차 수당에 대한 사항이 적혀 있었다. 관계자에게 우린 연차수당을 받은 적이 없다고 따졌더니 모두 월급에 포함되어 있다며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노동자 다섯 명이 시간을 쪼개 노동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께 할 노동자들을 모았다. 그렇게 노조가 만들어지고, 파업이 시작됐다.
생탁 노동자들의 휴무일은 한 달 중 딱 하루다. 그나마도 바쁘면 쉬지 못하는 때가 있었다고 한다. 일이 바빠 네 달 만에 처음 쉰 적도 있다는 이야기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또 일의 특성상 술이 출하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 4시까지 출근을 해야한다. 집이 가까우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회사에서 먼 거리에 사는 노동자들은 자가용을 끌고 오거나 택시를 타야 한다. 일반 시내버스 요금에 맞춰 지급되는 교통비로는 실제로 출근을 위해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탁 노동자들에게 시간 외 수당, 휴일 수당, 야간 수당 같은 건 별나라 이야기다. 정년이 55세로 정해져 노동자의 70%가 촉탁 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근무 환경도 매우 열악하다. 일요일 오후에는 식사대신 머릿수대로 딱 한개씩의 고구마나 감자를 준다. (그렇다고 노동의 강도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내가 살고 있는 연도가 2014년이 맞나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작년엔 약 200억을 들여 신사옥을 지었지만,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구 건물에 있는 휴식 공간은 가기가 꺼려질 정도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노동자를 혹사시키며 연 매출 200억을 이뤄낸 생탁은 현재 사장이 41명이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기형적인 구조는 박정희 정권의 주류정책에서 시작됐다. 부산에 흩어져 있던 양조장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양조장의 주인들이 지분을 얻어 사장이 된 것이다. 이들은 현재 매달 2000만원 상당의 배당금을 받아간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매달 약속된 돈이 나오니 누구하나 노조와의 협상에 나서는 이가 없다. 때문에 노조에서 수차례 요구한 협상은 차일피일 미뤄지고만 있다.
파업은 어느 새 140일을 넘겼다. 그 기간동안 회사에는 휴일이 늘어났고 파업을 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격려금과 임금 인상의 혜택까지 받았지만, 천막에서 돌아가며 새우잠을 자야 하는 조합원들의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 매일 거리로, 각종 관공서로 생탁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항의 방문을 하고 피켓 시위를 하고 있지만, 기관들의 태도는 우유부단하고 회사는 적당한 편법을 써가며 법적 위반 사항을 감추기 바쁘다. 지금은 처음 파업을 시작할 때에 비하면 연대하는 분들이 생겼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끌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오지필름은 되도록 빠른 기간 내에 영상으로 생탁의 이야기를 전할 생각이다. 영상을 보는 분들이 우리가 즐겨 마시던 생탁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일해 왔는지 느끼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했으면 좋겠다.
비가 쏟아지던 8월 말, 오랜만에 조합원들을 만나기 위해 찾았던 장림공장에서는 멀리서부터 술 익는 냄새가 진동했다. 기약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천막에서 맡는 술 익는 냄새가 어떨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처음엔 생각날 때 가끔 마셨던 생탁을 이제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고 했다. 조합원들의 몸에 다시 생탁 냄새가 배고, 내가 만들 술이 최고다 자부하며 일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린다. 생탁이 파업 중인 조합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정말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시길.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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