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보자. 만약 하루아침에 내가 살던 곳이 사라진다면 우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당장 내일 살 곳을 찾아봐야 할 것이고 집에 이 많은 짐은 어떻게 옮길 것이며 새로운 집은 무슨 돈으로 또는 어떻게 마련을 해야 할지 갖가지 고민이 들 것이다. 체감으로 오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다음을 살 방법들에 대한 궁리라면 정든 집을 떠나야하는 슬픔과 이웃들과 헤어지는 안타까움 그리고 추억이 흐트러지는 정서적인 고민들을 다음으로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상상에 불과하니 사실 어떻게 그 상황을 헤쳐 나갈지는 글로써만 서술 할 뿐, 당장 그런 일이 닥친다면 솔직히 말해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일이라면 믿겠는가? 앞서 했던 가정처럼 당장 하루아침에 내가 살던 곳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곧, 물속으로 사라질 누군가 살던 동네가 그리고 고향이 바로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강마을이다.
영화 <촌,금가이>는 영주댐이 건설되는 이곳을 2010년부터 2012년 까지 3년 간 기록한 영화다. 영화 제목 <촌,금가이>가 유독 의문이 들었는데 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마을이름이 금강마을인데 동네사람들은 금가이~ 금가이~ 해서 <촌,금가이>라 지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난 즉시 의문이 정겨움으로 바뀌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금가이~ 금가이~ 입으로 되뇌일수록 착~ 착~ 달라붙는 것이 거 참 제목 한 번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역업을 하던 장진수씨는 고향에 댐이 들어선다고 하여 서울에서 일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댐 건설 사업에 찬성을 한 상태였다. 400년 500년이 된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을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다고 말하는 장진수 씨는 어떻게 해서든 이 사업을 제 자리로 돌리고 싶었다. 이미 승인이 난 국책사업을 이길 힘은 개인에겐 없었고, 좀 더 미리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댐을 못 짓게 하지 왜 다 짓고 나서 이러냐는 어르신들의 언성 높은 소리에도 장진수 씨는 하루라도 더 시간을 끌려고 밭에 파종을 한다. 이런 노력도 잠시, 일 때문에 잠시 서울을 다녀온 며칠 동안 수자원공사는 장진수 씨의 밭을 쥐도 새도 모르게 갈아엎었고 망연자실한 장진수 씨는 오늘도 술 한 모금에 대한민국 정부를 욕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이 ‘공탁’이라는 것인데 국가는 국책사업의 명목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 개인의 땅을 강제로 수용하여 장애물 없이 국책사업을 진행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정말 뭣 같은 제도가 아닐 수 없다. 60,70년대 경제개발계획을 부르짓던 당시 박정희 정권이 국가성장을 위해 만들었던 법이 이미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최첨단과학시대가 된 21세기에도 버젓이 존재하면서 이런 가슴 아픈 일들은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촌,금가이>에서 장진수씨를 비롯하여 금강마을인 금광2리의 장씨집성촌의 사람들은 마을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와 고민들을 영화 내내 이야기한다. 마을의 집단 이주결정을 내리고서 터를 찾아야 하는데 문중의 땅에 이주단지를 만들려니 성체차지 않는 점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마음어른은 국책사업을 개인인 내가 반대할 수 있냐 하면서 사업을 막지 못했던 속내를 털어놓는다. 마음어른은 집단 이주단지로의 이주를 포기하고 근거리에 위치한 다른 곳에 집을 얻는데 마을 사람들이 깨지 않은 새벽에 이사를 한다. 자신이 떠나는 모습을 마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새벽 일찍 짐을 싸 나왔다는 말을 하며 흐느끼는 마음어른의 심정을, 고향을 버리고 떠나온 이의 심정을 본인이 아니면 누가 이해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고향이 없어지는 개인의 마음 속 깊은 이야기, 댐을 짓는 국책사업의 겉과 속 같은 영화 도처에 깔린 소주제 들을 구구절절, 꼬치꼬치 캐물어서 보는 이들에게 갈등을 드러내거나 혹은 의문점에 대한 갈증해소를 하지 않는다. 그저 감독은 이 마을의 사람들과 시간이 흘러가듯 그들의 삶을 카메라에 묵묵히 담아냈다. 때로는 이웃집 아저씨가 아닌 총각이 됐고, 때로는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도 되었으며, 때로는 장진수씨의 술친구가 되기도 하고 또 새벽에 도둑이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남모르게 이야기하는 마음어른의 유일한 상대가 되기도 했다.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카메라에 담으면서 이 마을의 이야기를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본인처럼 한 번 쯤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었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 할머니가 고향을 떠나기 싫어서 외지에 집을 얻어 놓고도 아직 금가이에 있는 이유를 말하면서 “내가 여기에서 죽을 줄 알았는데... 고향에서 생을 마칠 줄 알았는데 슬퍼요. 여기서 살라고 하면 내가 못 추는 춤을 열아홉 번도 출 거야” 하는 할머니의 말이다.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딸 아들 키워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보낸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이곳을 떠나야 하는 할머니의 심정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 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위로 할 수 있을까? 그게 만약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상상에만 있을 일이었으면 좋겠다. 영화 속 이야기가 실제가 아닌 상상 속의 일이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촌,금가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겟다. 하는 바람을 끝으로 이 글을 마쳐도 될까? 나의 바람들이 그저 바람처럼 떠나가지 않았으면 한다.
문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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