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내야 할 것들!!




석가탄신일이 끼어 황금연휴가 된 지난 주말 꿈에 그리던 영화제를 개최했다.


‘박.배.일.영.화.제’. - 박배일이 보고 싶은 영화를 박배일이 선정하고, 박배일 시간에 맞춰 스케줄을 짜고, 관객은 단 한사람 박배일인 영화제.


지난 토요일 아침부터 4편의 극영화와 5편의 다큐멘터리로 프로그래밍 된 영화제 일정을 소화했다. 3일 동안 총 9편의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영화제의 일정치곤 많은 편수는 아니지만 상영관이 부산 전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9편의 영화를 소화하기도 버거웠다. ‘박배일 영화제’의 상영관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집(덕천동), 오지필름 사무실(서면), 국도가람 예술관(대연동), 아트씨어터 씨앤씨(남포동)로 부산의 끝과 끝을 연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해서 영화를 봐야하는 귀찮음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관객수가 100만이 넘는 영화를 보며 ‘이걸 왜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보며 재미있어 할까? 난 대중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구나!’하며 좌절하는 것 보다 났기 때문이다. 9편의 영화를 굳이 분류하자면 ‘독립영화’로 멀티플렉스 영화관엔 상영이 되지 않는 영화다. 만약 부산이 아닌 타지역에서 ‘박배일 영화제’를 개최했다면 서울이나 부산으로 오는 기차표를 영화표보다 먼저 발권해야 할 것이다. 3일 동안 난 독립영화를 보며 작품을 해야한다는 의지를 다졌다.


한가로이 ‘박배일 영화제’를 진행하고 있을 때, 오지필름의 문창현 대표는 5월 29일에 있을 다큐멘터리 시사회를 위해 금요일부터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며 편집중이었다. 문대표는 지난 1월부터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20대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중이다. 한숨을 푹푹 쉬며 머리를 쥐어뜯는 문대표의 모습을 보며 혼자 놀고 있는 것 같아 눈치도 보였지만, 더 크게 신경 쓰였던 건 작품을 완성해서 보여 줄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독립다큐멘터리를 상영 할 수 있는 공간을 그렇게 많지 않다. 가장 흔한 방법은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건데 작품 편수가 제한 되어있어 연평균 2000편이 넘는 작품을 다 상영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 외엔 공동체 상영이나 드물지만 개봉을 하는 것인데, 단편 다큐멘터리로 제작중인 문대표 영화의 경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작품을 마무리하고 상영 할 공간이 없어 좌절할 문대표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5월 29일은 오지필름과 독립영화 진영에선 뜻 깊은 날로 기억 될 것이다. 오지필름에 들어와서 ‘나란 사람도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문대표가 작품을 만들어 관객과 만남을 가졌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2007년 11월에 개관한 인디스페이스는 독립영화의 최대 히트작인 ‘워낭소리’의 흥행에 큰 역할을 했고, 이후 독립영화와 관객과의 만남에 가장 중심에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고 영화인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던 인디스페이스는 정권이 바뀐 이후, 갑작스레 조건 없이 지원했던 방식을 바꿔 새로운 사업자를 공모했다. 영화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업의 주체가 바뀌었고, 인디스페이스는 재정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9년 12월 31일 휴관을 하게 되었다. 이후 독립영화에서 제 2의 워낭소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2년 넘게 휴관을 했던 인디스페이스가 영화인들과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재개관 했다. 재개관이 2년 넘게 걸린 이유는 정부의 지원 유무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문대표의 작품이 만들어진 것만큼 인디스페이스의 재개관이 기뻤던 이유는 돈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뜻있는 독립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지필름이 오랫동안 하고 싶은 독립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독립영화를 보는 문화가 생겨야한다. 관객들과 내가 만든 영화로 소통하는 경험은 힘든 현실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된다. 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사람들과의 접촉면을 넓혀야한다. 독립영화 전용관은 접촉면을 넓히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2년 전 우리는 기본조건을 허무하게 잃었다.

최근 독립영화 감독이 모여 ‘강정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인터뷰 주인공이었던 문대표가 술에 취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평소에 의식하고 있진 않지만 다들 알고 있죠.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문대표의 말을 들었을 때 문득 ‘인디스페이스’가 생각났다. 어떻게든 지켰어야 했는데...

인디스페이스는 독립영화인들에게 상징적인 곳이다. 한번 잃고 나니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고, 반드시 지켜야 할 곳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의식하고 있진 못하지만 부산에서도 독립영화를 관람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곳이 있다. 대연동에 있는 ‘국도가람예술관’, 남포동에 있는 ‘아트씨어터 씨앤씨’가 그곳이다. 그곳을 지키기 위해선 자주 찾고,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고마움도 표시하고,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해야한다. 이곳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 사라지게 된다면 문대표와 내가 제작한 작품을 상영할 공간을 잃게 된다. ‘박배일 영화제’의 상영공간도 집과 사무실로 한정 될 것이다. 난 더 이상 소중한 걸 잃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


부산지역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국도가람예술관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gukdo 문의처 051-245-5541

아트씨어터 씨앤씨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cnctheater 문의처 051-44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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