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아서 하는 거야!!

 

언젠지 생각나지도 않는 연애시절, 여자 친구에게 가끔 확인 했었다. “내가 왜 좋아?”

여자 친구의 대답은 언제나 내 기대와 달리 일관됐다. “그냥~ 좋은 이유 없이 좋아!”.

어떻게 사람을 좋아하면서 좋은 이유가 없지? 난 당신을 사랑하는데 수 백가지 좋은 이유가 있는데 말이야~’. 가만 생각해보면 나란 놈은 무엇을 하든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했다.

최근 진행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모니터하기 전까진 말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오지필름에선 선택에 관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문창현 정슬아 감독의 <나와 나의 거리>는 부모의 바람대로 선택된 삶을 산 친구와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가는대로 선택한 삶을 산 친구의 선택의 지점을 돌아보고, 자신들의 꿈이었던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기 위해 선택해야 할 지금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으면서, ‘우리들에게 선택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다큐멘터리이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모니터하는 과정에서 두 친구는 내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여러 번 흘렸다. 그녀들의 눈물을 보고 내가 좀 심했나?’ 싶다가도, ‘조금 힘들어도 할 말을 해야지!’하며 그 작품을 보며 들었던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부끄러워지는 눈물이 있다.

작품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려는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다큐멘터리를 하려는 이유가 지금도 분명하지 않은 건지? 아님 표현을 못한 건지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이런 말을 들은 그녀들은 자신이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려는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곤 선배 저는 다큐멘터리를 하면 안되는 건가요? 다큐멘터리를 하려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그냥...” 당시만 해도 그녀들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선택에 관한 또 한편의 다큐멘터리는 한동혁 감독의 <그 자퇴하는 학생은 어디로 가면 됩니까!>. 영화는 자퇴를 선택한 감독이 자신이 평소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자신이 자퇴한 상태에 대해 물으며 변하는 감정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영화를 제작하고 다른 사람들과 시사를 하면서 난 약간 놀랐다. 처음 한동혁이 자퇴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선택에 관한 다른 이들의 시선에 대해 알아보자는 의미에서 영화를 제안 했었다. 영화를 진행하는 동안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단 걸 깨달았다. 그의 선택을 지지 혹은 비판하는 부류와 상황과 사람을 판단하며 납득할만한 이유를 요구하는 부류가 있었다. 한동혁이 자퇴를 한 이유는 단순하다. 학교 교육 시스템이 자신과 맞지 않고, 지금하고 싶은 공부와 영화를 하려면 학교 가는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이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철 없는 어른의 말에 넘어 간 것 같다.’, ‘학교 교육 시스템에 반기를 들고 그것에 대해 저항하기 위한 것이면 인정하겠다.“는 말로 그의 선택을 어린 친구의 치기로 여겼다. 한동혁은 그런 말을 듣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나는 자퇴도 하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자퇴를 지지하지 않아서 힘든 게 아니라 선택이라 인정하지 않는 게 힘들다.”라는 말은 내게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영화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난 처음과 끝을 중시한다. 내용의 모든 함축이 처음과 끝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빨을 제안 받았을 때 첫 글을 어떤 내용으로 담아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 고민 끝에 내가 적은 글의 내용은 내가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밝히는 것이었다.

자퇴처럼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의 길도 흔한 선택은 아니다. 우리는 대로를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 설 때 강력한 이유가 있길 원하고 그걸 폭력적으로 묻는다. “왜 남들 다가는 길 놔두고 혼자 튀게 이 길을 선택하셨나요?” 그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첫 글에서 흔치 않은 길을 선택한 나의 이유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글을 다시 읽어보니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거창한 이유가 나열되어있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진행하면서 한국사회에서 주류가 가하는 비주류에 대한 폭력에 대해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폭력을 방어하기 위해, 폭력에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비주류의 고군분투 이유 찾기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문창현 정슬아 감독이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다큐멘터리 작업하는 것을 지지한다. 계속해서 하는 얘기지만 한동혁 감독이 자퇴를 선택한 것을 응원한다.

 

관객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늘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상업영화나 극 영화를 만들 생각 없나요? 왜 독립다큐만 고집하나요?”라고 물을 때 항상 주저리주저리 이유를 댔던 것 같다. 하지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이유에 앞서 더 강한 이유는 난 독립다큐멘터리가 좋다. 사람들과 관계 맺는 과정이 즐겁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매력적이다. 100명 가까이 되는 스텝들 이끌고 싶지 않고, 두 세 명이서 2,3년 작업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바치는 게 재미난 거다.”. 아니!!!

긴 말 필요 없이, 헤어진 여자친구의 말을 빌어 그냥 좋은 이유 없이 좋아서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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