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저 모습을 계속 보고 있어야 하는 걸까?’

고백하건데, 주현숙 감독의 <가난뱅이의 역습>을 보는 내내 나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보통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볼 때, 내 나름대로의 예상과 기대를 가지고 본다. 단순히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어떤 메시지를 나에게 던져줄지에 대해 나름의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그 상상이 이따금 카운트 펀치를 맞는 때가 있는데, 실로 오랜만에 <가난뱅이의 역습>이 그 주인공이 되었다.


 

<가난뱅이의 역습>은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위치한 주거공동체 빈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미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꽤나 유명해진 책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역습이라는 단어에 꽂혀 버렸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빈집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대고 날리는 통쾌한 한방 같은 것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가난뱅이의 역습>빈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토론과정을 끈질기게 쫓을 뿐이다. 심지어 그 과정이 즐겁지도 않다. 함께 살아가기를 꿈꾸며 모인 사람들이지만 저마다의 생각과 가치관이 부딪혔고, 현실적인 어려움은 늘 그들의 등 뒤에 서 있다. 어떠한 결론도 나지 못하는 회의가 연속 되고, 적막이 감도는 자리에서 입을 다문 채 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함과 불편함이 몸을 뒤틀리게 한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은 그 과정을 놓치거나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감독의 고집이다.

<가난뱅이의 역습>에서 세상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고야 만다. ‘빈집의 사람들은 집을 갖기 위해 살아가는 삶을 거부한 대신, 함께 살기 위해 몇 배는 더 고군분투하는 삶을 택했다. 이런 모습은 누군가에겐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지난하고 치열한 토론의 끝에서 결국 얻어내고 마는 합의는 불편한 과정을 견디고 이뤄낸 이해의 순간이다. <가난뱅이의 역습>은 함께 하는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 있음을 우직하게 말하고 있다.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면 이해의 순간은 오지 않는다.’

언젠가 SNS에서 본 글귀다. <가난뱅이의 역습>을 보고 난 후, 저 문장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 돌아서버린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불편함을 견디는 연습을 해보자는 작은 다짐을 해 본다. 그 과정을 지나 찾아올 이해의 순간들이 기대되고 궁금해진다. 그리고 지금도 밀려드는 어떤 불편함들과 맞서고 있을 빈집의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역습이란 게 별건가! 그들이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김작가

 

 

 

 

 

 

상상해보자. 만약 하루아침에 내가 살던 곳이 사라진다면 우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당장 내일 살 곳을 찾아봐야 할 것이고 집에 이 많은 짐은 어떻게 옮길 것이며 새로운 집은 무슨 돈으로 또는 어떻게 마련을 해야 할지 갖가지 고민이 들 것이다. 체감으로 오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다음을 살 방법들에 대한 궁리라면 정든 집을 떠나야하는 슬픔과 이웃들과 헤어지는 안타까움 그리고 추억이 흐트러지는 정서적인 고민들을 다음으로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상상에 불과하니 사실 어떻게 그 상황을 헤쳐 나갈지는 글로써만 서술 할 뿐, 당장 그런 일이 닥친다면 솔직히 말해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일이라면 믿겠는가? 앞서 했던 가정처럼 당장 하루아침에 내가 살던 곳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곧, 물속으로 사라질 누군가 살던 동네가 그리고 고향이 바로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강마을이다.


 

영화 <,금가이>는 영주댐이 건설되는 이곳을 2010년부터 2012년 까지 3년 간 기록한 영화다. 영화 제목 <,금가이>가 유독 의문이 들었는데 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마을이름이 금강마을인데 동네사람들은 금가이~ 금가이~ 해서 <,금가이>라 지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난 즉시 의문이 정겨움으로 바뀌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금가이~ 금가이~ 입으로 되뇌일수록 착~ ~ 달라붙는 것이 거 참 제목 한 번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역업을 하던 장진수씨는 고향에 댐이 들어선다고 하여 서울에서 일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댐 건설 사업에 찬성을 한 상태였다. 400500년이 된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을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다고 말하는 장진수 씨는 어떻게 해서든 이 사업을 제 자리로 돌리고 싶었다. 이미 승인이 난 국책사업을 이길 힘은 개인에겐 없었고, 좀 더 미리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댐을 못 짓게 하지 왜 다 짓고 나서 이러냐는 어르신들의 언성 높은 소리에도 장진수 씨는 하루라도 더 시간을 끌려고 밭에 파종을 한다. 이런 노력도 잠시, 일 때문에 잠시 서울을 다녀온 며칠 동안 수자원공사는 장진수 씨의 밭을 쥐도 새도 모르게 갈아엎었고 망연자실한 장진수 씨는 오늘도 술 한 모금에 대한민국 정부를 욕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이 공탁이라는 것인데 국가는 국책사업의 명목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 개인의 땅을 강제로 수용하여 장애물 없이 국책사업을 진행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정말 뭣 같은 제도가 아닐 수 없다. 60,70년대 경제개발계획을 부르짓던 당시 박정희 정권이 국가성장을 위해 만들었던 법이 이미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최첨단과학시대가 된 21세기에도 버젓이 존재하면서 이런 가슴 아픈 일들은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금가이>에서 장진수씨를 비롯하여 금강마을인 금광2리의 장씨집성촌의 사람들은 마을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와 고민들을 영화 내내 이야기한다. 마을의 집단 이주결정을 내리고서 터를 찾아야 하는데 문중의 땅에 이주단지를 만들려니 성체차지 않는 점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마음어른은 국책사업을 개인인 내가 반대할 수 있냐 하면서 사업을 막지 못했던 속내를 털어놓는다. 마음어른은 집단 이주단지로의 이주를 포기하고 근거리에 위치한 다른 곳에 집을 얻는데 마을 사람들이 깨지 않은 새벽에 이사를 한다. 자신이 떠나는 모습을 마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새벽 일찍 짐을 싸 나왔다는 말을 하며 흐느끼는 마음어른의 심정을, 고향을 버리고 떠나온 이의 심정을 본인이 아니면 누가 이해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고향이 없어지는 개인의 마음 속 깊은 이야기, 댐을 짓는 국책사업의 겉과 속 같은 영화 도처에 깔린 소주제 들을 구구절절, 꼬치꼬치 캐물어서 보는 이들에게 갈등을 드러내거나 혹은 의문점에 대한 갈증해소를 하지 않는다. 그저 감독은 이 마을의 사람들과 시간이 흘러가듯 그들의 삶을 카메라에 묵묵히 담아냈다. 때로는 이웃집 아저씨가 아닌 총각이 됐고, 때로는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도 되었으며, 때로는 장진수씨의 술친구가 되기도 하고 또 새벽에 도둑이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남모르게 이야기하는 마음어른의 유일한 상대가 되기도 했다.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카메라에 담으면서 이 마을의 이야기를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본인처럼 한 번 쯤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었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 할머니가 고향을 떠나기 싫어서 외지에 집을 얻어 놓고도 아직 금가이에 있는 이유를 말하면서 내가 여기에서 죽을 줄 알았는데... 고향에서 생을 마칠 줄 알았는데 슬퍼요. 여기서 살라고 하면 내가 못 추는 춤을 열아홉 번도 출 거야하는 할머니의 말이다.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딸 아들 키워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보낸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이곳을 떠나야 하는 할머니의 심정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 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위로 할 수 있을까? 그게 만약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상상에만 있을 일이었으면 좋겠다. 영화 속 이야기가 실제가 아닌 상상 속의 일이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금가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겟다. 하는 바람을 끝으로 이 글을 마쳐도 될까? 나의 바람들이 그저 바람처럼 떠나가지 않았으면 한다.

 


문대표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소식지(제 95호)에 생탁노조에 대한 짧은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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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남도민일보

 

 생탁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된 건 부산 MBC 라디오 프로그램 <라디오시민세상>을 통해서였다. 내 아버지 또래의 아저씨 두 분이 빨간 조끼를 입고 앉아, 방송 녹음을 위해 원고가 뚫어져라 살피더 모습이 기억 속에 선명하다. 수려한 말솜씨에 유쾌함을 잃지 않던 두 분의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라디오 방송이 나간 후 신문이나 tv에 생탁과 관련된 뉴스가 있나 찾아보았지만 인터넷 한 페이지를 다 채우지 못하는 정도의 기사만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나마도 너무 간략해서 기사만으로는 상황파악이 어려웠다. 언론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주목했다면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대신했겠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야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으로 오지필름에서 짧은 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생탁 노동조합 조합원들을 만나기 위해 생탁 장림 공장을 찾았다. 얼마 전 지었다는 으리으리한 사옥 앞으로 조합원들의 천막이 서 있었다.

 소비자의 좋은 친구라 말하며 부산의 대표 막걸리로 자리 잡은 막걸리 '생탁'은 정작 생탁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파업을 시작한 이유는 '해도 해도 너무 해서'였다. 우연히 보게 된 사규집에 생전 듣도 보도 못했던 연차 수당에 대한 사항이 적혀 있었다. 관계자에게 우린 연차수당을 받은 적이 없다고 따졌더니 모두 월급에 포함되어 있다며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노동자 다섯 명이 시간을 쪼개 노동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께 할 노동자들을 모았다. 그렇게 노조가 만들어지고, 파업이 시작됐다.

 생탁 노동자들의 휴무일은 한 달 중 딱 하루다. 그나마도 바쁘면 쉬지 못하는 때가 있었다고 한다. 일이 바빠 네 달 만에 처음 쉰 적도 있다는 이야기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또 일의 특성상 술이 출하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 4시까지 출근을 해야한다. 집이 가까우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회사에서 먼 거리에 사는 노동자들은 자가용을 끌고 오거나 택시를 타야 한다. 일반 시내버스 요금에 맞춰 지급되는 교통비로는 실제로 출근을 위해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탁 노동자들에게 시간 외 수당, 휴일 수당, 야간 수당 같은 건 별나라 이야기다. 정년이 55세로 정해져 노동자의 70%가 촉탁 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근무 환경도 매우 열악하다. 일요일 오후에는 식사대신 머릿수대로 딱 한개씩의 고구마나 감자를 준다. (그렇다고 노동의 강도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내가 살고 있는 연도가 2014년이 맞나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작년엔 약 200억을 들여 신사옥을 지었지만,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구 건물에 있는 휴식 공간은 가기가 꺼려질 정도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노동자를 혹사시키며 연 매출 200억을 이뤄낸 생탁은 현재 사장이 41명이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기형적인 구조는 박정희 정권의 주류정책에서 시작됐다. 부산에 흩어져 있던 양조장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양조장의 주인들이 지분을 얻어 사장이 된 것이다. 이들은 현재 매달 2000만원 상당의 배당금을 받아간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매달 약속된 돈이 나오니 누구하나 노조와의 협상에 나서는 이가 없다. 때문에 노조에서 수차례 요구한 협상은 차일피일 미뤄지고만 있다.

 파업은 어느 새 140일을 넘겼다. 그 기간동안 회사에는 휴일이 늘어났고 파업을 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격려금과 임금 인상의 혜택까지 받았지만, 천막에서 돌아가며 새우잠을 자야 하는 조합원들의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 매일 거리로, 각종 관공서로 생탁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항의 방문을 하고 피켓 시위를 하고 있지만, 기관들의 태도는 우유부단하고 회사는 적당한 편법을 써가며 법적 위반 사항을 감추기 바쁘다. 지금은 처음 파업을 시작할 때에 비하면 연대하는 분들이 생겼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끌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오지필름은 되도록 빠른 기간 내에 영상으로 생탁의 이야기를 전할 생각이다. 영상을 보는 분들이 우리가 즐겨 마시던 생탁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일해 왔는지 느끼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했으면 좋겠다.

 비가 쏟아지던 8월 말, 오랜만에 조합원들을 만나기 위해 찾았던 장림공장에서는 멀리서부터 술 익는 냄새가 진동했다. 기약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천막에서 맡는 술 익는 냄새가 어떨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처음엔 생각날 때 가끔 마셨던 생탁을 이제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고 했다. 조합원들의 몸에 다시 생탁 냄새가 배고, 내가 만들 술이 최고다 자부하며 일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린다. 생탁이 파업 중인 조합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정말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시길.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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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글은 김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을 끄적거린 것이지만 반박이나 코멘트 해주신다면 겸허히, 감사히 받겠습니다~

말그대로 잡담이니 멋진 비평글을 기대하셨다면 기대감을 살짝 죽이시길~ 




‘우리나라는 차라리 양반이구나.’

2014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액트 오브 킬링>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충격을 넘어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다큐멘터리. 그러나  이것이 나의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액트 오브 킬링>은 덴마크의 다큐멘터리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작품. 인도네시아의 단면을 그저 관찰하듯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감독이 1960년대 인도네시아의 군부독재시절 일어난 대량학살사건의 중심 인물들을 찾아가 그 당시의 모습을 재연해달라는 부탁을 할 때, 순간 나는 감독이 미쳤다고 생각했다.(이 때의 미쳤다는 긍정과 부정의 뜻이 모두 포함된다. 그때의 생각은 그랬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이 더 가관이다. 흔쾌히 요구를 수용하며 신난 아이의 표정을 하고 있다. 제정신이 아닌 인간들을 미친 감독이 담아내겠구나. 경악과 호기심, 두려움이 오묘하게 섞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 짐작조차 가지않는. 


그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재연한다. 일말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 오히려 자신이 잘한 일을 칭찬해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어린아이처럼 그들은 아주 태연하게 살인의 순간을 재연한다. 

헤실헤실 웃으며 사람의 목에 철사를 감아 있는 힘껏 당길 때,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입이 벌어지고, 소름이 돋는다. 그리곤 이건 놀라운 일도 아니라는 듯,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하다 말하는 영화를 촬영하기 시작한다. 모든 일의 중심에는 그 당시 학살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안와르 콩고’가 있다. 


안와르 콩고는 자신을 중심으로 그가 속해있는 단체의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촬영하기 시작한다. 학살의 당사자들이 만들어가는 영화라 충격은 배로 다가온다. 영화 속 학살장면은 매우 사실적이고 잔인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이는 모두 ‘민주주의’라는 이름아래 ‘공산주의자’들을 척결했던 당연한 행위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일뿐이다. 영화의 중간중간에는 안와르 콩고를 중심으로 유려하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화려한 미장센들이 배치된다. 그들에겐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과정이었을지 몰라도 스크린 너머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나는 이 기괴한 조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그들을 추앙하고 있었다. 국영방송에서 그들의 일화를 토크쇼로 내보내고, 모두가 자랑스럽게 당시 상황을 떠들어댄다. 아나운서의 ‘인도주의적인’이란 말에는 소리나게 실소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인도주의라는 단어가 붙을 수 있다니. 그들이 학살의 과정을 태연하게 예술이란 이름으로 둔갑시키는 일이 저 나라에선 박수를 받을만한 일이겠구나 생각하니 허탈했다. 으리으리한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사는 집오리를 보살피고, 손주들을 끌어안고 여느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온화한 미소를 지을 때는 혼란스럽다. 저 사람은 본래가 악한 사람일까, 아니면 나라가 그를 그렇게 만들어낸 걸까…. 저 사람이 인도네시아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념의 갈등이 극에 달하던 시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다른 모습이었을까. 





내가 그를 지켜보며 악인의 잣대를 한참 들이대고 있을 때, 그의 견고함에 균열이 생긴다. 그는 영화 속 어느 장면에서 처음으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연기한다. 남의 목에 걸던 철사줄을 처음 자신의 목에 걸었을 때, 그는 흔들린다. 안와르 콩고의 두려운 얼굴이라.. 생경했다. 선배에게 들었던 ‘기적적인 순간’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다큐멘터리를 찍다 보면 감독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다는 순간… ’기적’이란 단어를 쓰기엔 부적절하겠지만, 반성이라곤 모를것 같던 그의 흔들림은 또 다른 충격을 던졌다. 살인을 항상 정당화 한 것과 영화를 제작한 것 모두 누군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의지로 시작되었으니까. 자신을 정당하다 말하기 위해 시작한 일로 자신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는 끝내 처절한 헛구역질을 한다. 짐승의 소리를 내며, 속에 있는 것들을 다 쏟아붓기라도 할 듯이. 

그가 정말 반성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안와르 콩고의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이 꽁꽁 묶여 쳐박혀 있다는 것 정도는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을 쏟아낼지 말지는 그가 선택할 일이다. 





영화의 마지막. 목에 철사줄을 감고 있는 희생자의 대표격 되는 사람이 안와르 콩고에게 금메달을 걸어준다. 자신들을 살해해서 천국으로 보내준 것이 감사하다고 말하며. 어쩌면 그가 만들어낸 이 기괴한 영화는 그가 숨기고 싶은 감정들의 집합체일지도 모르겠다. 과장된 인물, 과장된 미장센, 우스꽝스럽고 잔인한 상황들.. 다큐멘터리가 끝날때 까지 당최 이해되지 않던 안와르 콩고의 영화가, 그가 벌이는 일종의 발악으로 느껴지자 말도 안되는 측은지심이 생겼다. 감독이 어떤 생각으로 이 다큐멘터리를 마무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악을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마주하게 만든 그의 도발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최고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두고두고 곱씹으며 잊지 못할 다큐멘터리가 될 것은 분명하다. 


며칠 후, 대한민국에선 수많은 고등학생들과 일반인을 싣고 항해하던 배가 가라앉는다. 생존자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찬 바다속에 갇혀 있다. 눈물과 한숨은 마르지 않고, 나라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뒷짐을 지고 헛기침만 하며 서 있을 뿐.


나는 이상하게도, 자신의 행적을 설명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던 안와르 콩고가 떠올랐다. 그는 학살이 누군가의 지시로 행한 일이며, 늘 자신은 정당하다고 빳빳한 자세로 말했었다. 물론 맥락이 다른 일이지만, 왜 자꾸 겹쳐보이는 걸까. 당장을 수습하기에 급급한 이 나라의 일꾼이란 사람들, 제대로된 보도조차 하지 못하는 주류언론. 

그저 비난받을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나을게 뭐란 말인가. 내가 영화를 보며 한참 멀었다 섣부르게 말했던 인도네시보다… 


<액트 오브 킬링>을 보고 나서 뜻을 검색했더니 ‘살육 또는 살인행위’가 가장 맞는 번역이라고 하더라.이제는 보기도 싫은 뉴스들이 꾸역꾸역 들려올때마다, 인터넷 헤드라인 제목을 아프게 훑을때도 나는 자꾸 이 단어가 떠오른다.


‘액트 오브 킬링.’ 


이 나라가 저지르고 있는 ‘액트 오브 킬링’을 멈출 수 있는 날이 과연 오기는 할지.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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