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주렁주렁 포도가 열려있다. 작은 마당엔 알 수 없는 꽃과 풀들이 무성하고, 아늑한 툇마루가 놓여있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다다미로 된 바닥이 특유의 향을 내며 도시에 지친 사람들을 맞이한다. 손수 만든 책장엔 오래된 서적들이 꽂혀 있고, 겨울철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 먹을 수 있는 화목난로가 정취를 더한다. 연두방, 풀잎방, 녹두방에선 왁자지껄 수다가 이어지고, 영화를 보고, 농사를 배우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 늘 비어있지만 언제나 채워져 있는 곳. 주인도 손님도 없는 곳. 자물쇠가 없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모두가 주인이 되는 열린 공간, ‘공간초록의 풍경이다.

 

공간초록은 KTX 선로를 깔기 위해 천성산에 구멍을 뚫는 걸 반대하기 위해 제기한 도롱뇽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날, ‘공간에 대한 지율스님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사람냄새 흐리게 만드는 도시 안에 공간 하나 비워 놓고, 서로 살 부비며 함께하는 문화를 만드는 공간이 되길 바라며 천성산 지킴이들이 고기집을 개조해 만들었다. 공간을 비워 둔지 7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들고 공간을 찾고 있다.

 

내가 공간초록과 처음 만난 건 2009년 겨울이었다. 살 떨리던 날이 이어지던 어느날 영화를 보기 위해 들른 공간초록에선 장작이 타고 있었다. 자신에게 가장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보고, 추위를 피해 난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군고구마 까먹으며 영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장면은 아직까지 재현되고 있다. 도시에서 흔히 느낄 수 없는 감정에 취해 공간초록을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책 읽고 싶을 때, 영화 보고 싶을 때, 차 마시고 싶을 때, 생각을 비우고 싶을 때, 그냥 지나가다 자고 싶을 때... 공간초록은 비겁한 계산 없이,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받아들이는 공간이다.

 

공간초록을 찾는 사람들은 나를 비롯해 하나 같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용돈이 부족한 대학생, 언제 짤릴지 모를 비정규직 노동자, 가난한 예술가... 하지만 이들은 가난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이 주는 긍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작은 것도 나누고, 무엇이든 함께 즐긴다. 자기가 가진 재능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발휘하고, 소외 된 이웃이 있다면 그들에게 찾아가 힘을 실어준다. 최근 강정마을에서 있었던 평화대행진에 참석했고, 밀양에서 송전탑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싸우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함께 할 일들을 고민하기도 했다. 가난의 긍정을 활용하여 연대를 극대화 하는 것이 공간초록이 만들어가는 문화다.

 

나 역시 이곳에서 작은 역할을 맡고 있다. 다른 이들보다 독립영화를 접할 기회가 많은 내가 2년 전부터 한 달에 한번 있는 초록영화제의 영화를 선정하고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초록영화제의 시작은 2007년부터다. 생명과 평화를 주제로 한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던 처음 기획에서 확장되어, 현재는 다양한 사회적 사안을 공유 할 수 있는 작품을 보고 이야기 나눈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730분에 독립영화 상영이 있으니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

 

2011, 오지에 있는 존재들의 가치를 복원시키기 위해 오지필름을 만들었고 처음 찾은 곳이 공간초록이었다. 그곳에서 오지필름을 소개하는 사진을 찍었다. 무언가를 꽉꽉 채워나가길 강요하는 도시에서 끊임없이 비워나가며, 세상과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공간초록처럼 오지필름 역시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7년이란 시간동안 부산교대 옆을 지키고 있는 공간초록은 지금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간초록은 형식과 규칙이 없다. 누구나 무엇이든 기획 할 수 있고, 언제나 변형 가능하며,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다. 누군가 문화를 만들고, 연대를 행하고, 변화를 꿈꾼다면 가장 필요한 요소들일 것이다. 우리는 공간초록을 닮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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