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전> 리플렛 이미지. 공동체 상영 초반에는 천 장이 넘는 리플렛을 손으로 접는 가내수공업을 하기도 했다.

 

 

의 하루는 사무실에 출근해 오지필름 메일함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메일함이 열리면 가장 먼저 눈으로 찾는 단어는 밀양전’, 혹은 공동체 상영이다. 일개감독의 <밀양전> 공동체 상영 신청을 확인하는 일, 작년 11월 중순부터였으니 이제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우물쭈물 횡설수설 콤보로 상대를 당황시키던 김수습은 이제 몇 가지 멘트를 정해두고 상황에 따라 말을 골라 쓰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 사이 스스로 김작가란 닉네임을 달았고, 오지인으로 바쁘지 않은 듯 바빴던 시간이 흘렀다. 글을 쓰는 오늘로 약 150번의 공동체 상영이 이루어졌다. 이제 20여일 후면 일개감독의 두 번째 밀양이야기 <밀양아리랑>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일 것이고, <밀양전> 공동체 상영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되겠지. <밀양아리랑> 공동체 상영을 진행하게 될 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후에 일이야 어떻든 그동안의 나름은 파란만장? 했던 공동체상영 진행기를 털어놓으려 하니 들어주시길.

 

아직은 낯선 공동체 상영

 

공동체 상영을 진행하면서 느낀 것들 중, 가장 피부로 와 닿았던 건 아직 공동체 상영이 사람들에게 너무 낯선 것이라는 점이었다. 오지가 <밀양전> 공동체 상영을 시작했던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밀양의 상황을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였다. 큰 극장에 개봉을 하는 것만큼 효과가 큰 것도 없겠지만, (특히) 독립 다큐멘터리를 극장개봉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곳으로 영화가 찾아가는 것. 밀양의 상황을 알려야 하는 목적을 가진 우리가 지금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공동체 상영을 시작하던 당시 밀양의 상황은 하루하루가 살얼음 위를 걷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밀양의 상황을 궁금해 하고, 연대의 마음을 보태고자 하는 많은 분들이 공동체 상영에 대한 문의를 해 왔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에게 공동체 상영이 아직 많이 생소하단 걸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밀양의 상황에 관심을 가져주는 고마움과는 별개로, 공동체 상영에 있어 필요한 절차들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은 스트레스였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역시나 상영료를 이야기할 때였다. 돈을 적게, 혹은 늦게 받는 것이 힘든 게 아니라 상영료가 너무 비싸다는 인식에 대해 어떻게 오해 없이 잘 설명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오지가 정한 기준대로 상영료를 받은 곳은 많이 없다.) 정말, 아주, 가끔, 너무도 당연하게 공짜 상영을 바라는 곳을 만나면 힘이 쭉 빠지기도 했다. 일개감독과 문대표가 생각났다. 창작물을 소비하는 것에 돈을 들이는 일을 많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 사람들을 탓할 순 없다. 방법은 더 많이 알리는 수밖에 없구나. 길게 봤을 때 공동체 상영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라도 나는 조금 뻔뻔해져야겠구나. 어떻게 하면 공동체 상영이 좀 더 친숙한 문화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은 여전히 진행 중인 숙제로 남았다.

 

전화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란

 

전화를 하기 전 심호흡은 중요하다. 말을 버벅 대지 않기 위해, 급한 성격이 불쑥 튀어나와 흥분하지 않기 위해. 대부분이 전화 업무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번 일은 나에게 하나의 도전과 같았다. 누가 들으면 코웃음을 칠지 모르지만 나에겐 그랬다. 정말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전화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나다. 가족과 전화하는 것도 어색해하니까 이정도면 말 다했지. 공동체 상영을 진행하면서 단어하나 말투하나 조심하고, 사투리의 억양 때문에 혹 기분을 상하게 할까 어설프기 짝이 없는 서울말을 써가매 용을 썼다. 평소라면 요금제로 주어진 통화량에 반도 쓰지 않는 나인데, 공동체 상영을 시작하고 처음 몇 달은 통화시간이 모자란 걸 보며 기가 막혀 웃었다. 한번은 전화업무가 어느 정도 익숙해 졌을 때였다. 몰려드는 문의전화에 지쳐, 한번만 더 하면 되는 확인전화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덕분에? 일개감독이 감독과의 대화를 하지 못하고, 그 자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게 하는 대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심지어 부산과도 먼 곳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전화를 걸고 받기는 여전히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다. 오늘도 심호흡은 필수!

 

고마운 사람들

 

150여 번의 상영회 동안 약 2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밀양전>을 보았다. (상영 인원을 정확하게 적어주지 않은 곳이 꽤 있어 확실하진 않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부터 주부, 노조, 각종 시민단체, 동아리까지 여러 곳에서 <밀양전> 공동체상영을 신청했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고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셨다. (그럼에도 그 마음들을 할매들께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점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가장 많았던 소감은 밀양에 계신 할매들께 고맙고 감사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관심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다짐들. 특히 <밀양전>을 보고 밀양에 연대를 하게 됐다는 말을 들을 땐 오지가 공동체 상영을 하기로 했던 이유를 찾는 것 같아 기뻤다. 자금사정이 넉넉지 않음에도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공동체 상영을 비롯한 행사를 기획해준 단체들이 많았다. 직접 찾아가 보진 못했지만, 영화를 보고 함께 생각을 나누기 위한 적절한 행사들이 함께 기획되면, 공동체 상영이 훨씬 좋은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공동체 상영은 담당자인 우리보다 당일 상영을 진행해야 하는 사람들의 몫이 크다. 적극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참여하면 영화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고 깊게 마음과 기억 속에 각인된다. 때문에 공동체 상영을 위해 많이 고민하고 진행해주셨을 분들에게 이 글을 빌어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방아골 노동조합에서 보내준 상영후기사진. 직접 쓴 메시지를 들고 사진을 찍어주셨다.

 

 

부산에 대한 아쉬움

 

밀양 송전탑이 세워지는 가장 큰 이유는 부산 기장에 있는 고리 원전을 가동시키기 위함이다. 이 글에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순 없지만, 밀양 송전탑에 무관심한 것은 부산에 떡하니 자리한 시한폭탄에 불을 붙여놓고 부채질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 표현이 거친 걸까? 나는 <밀양전>을 지켜보고, 일개감독을 도와 <밀양아리랑>을 만들면서 너무도 절실하게 깨달았다. 부산은 너무 큰 위험을 껴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걸. 공동체 상영을 진행하며 가장 큰 아쉬움은 바로 부산이다. 150여 번의 공동체 상영 중 <밀양전>이 부산에서 상영된 것은 스무 번도 채 되지 않았다. <밀양전>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밀양 송전탑과 고리원전에 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 상영이 아니더라도 다른 지역에 비해 관심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이 부재의 이유는 뭘까? 사실 잘 모르겠다. 이 부분에 대해선 공부가 필요함을 느낀다. 이유를 알게 되면 고요한 부산이 원전 반대로 들썩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방법에 오지의 영화도 한 몫 할 수 있도록, 공동체 상영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같이 봅시다! 독립 다큐멘터리 :-)

 

나는 오지에서 만들어진 독립 다큐멘터리 한 편만 가지고 공동체 상영을 진행한 풋내기(?). 많은 분들이 다양한 독립영화를 공동체 상영하기 위해 고민하며 애쓰고 있다. 앞으로도 오지의 공동체 상영은 우리가 만든 영화만을 가지고 진행되겠지만, 독립 다큐멘터리를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 이상 공동체 상영 역시 오지의 고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을 안다. 다른 지역은 독립영화 배급을 위해 애써주시는 분들에게 맡기더라도 부산에서 독립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고 나눌 수 있는 방법들은 오지필름, 그리고 부산에서 독립영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 그저 영화를 전달하는 역할 뿐 아니라 공동체 상영이 더 잘 이루어지기 위한 오지의 역할을 고민하는 일이 숙제로 남았다.

우리가 모르는 새 영화관에 상영되지 못한 채 흘러가고 마는 좋은 독립영화, 독립다큐멘터리들이 가득하다. 그 영화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공동체 상영을 통해 조금 작은 화면, 불편한 상황이라도 얼굴을 맞대고 앉아 영화를 나누고 생각을 넓힐 수 있는 매력 만땅의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많이 미숙했던 10개월, 공동체 상영을 일단락 하며 나름의 글로 그동안을 정리해본다. 하지만 여전히 공동체 상영은 진행 중이고, 나는 공동체 상영을 신청할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를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밀양 송전탑 싸움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주저 말고 신청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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