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위치한 미디토리 협동조합과 카페 나무가 함께 제작하는 잡지 [청년보통씨]!!

두번째로 제작된 이번 잡지에 일개감독의 인터뷰가 실려서 여러분께 전합니다.

청년들(보통씨라고 지칭합니다)이 직접 일개감독을 인터뷰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하네요.

잘 듣고, 잘 옮겨서, 잘 전해준 보통씨 여러분 고맙습니다~!

 

===============================================================================================================

 

나의 노동, 나의 삶

사람은 왜 일을 하는 걸까? 어째서 아버지는 30년 동안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어머니는 손에 물기가 마를 틈도 없이 일터로 향하는 것일까.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일은 인간에게 너무 가혹하다. 하루는 치열하게 흘러가지만, 사람은 그 고비마다 또 다른 무언가를 이뤄내고 있는 건 아닐까. 먼저 일터에 들어선 보통씨의 선배들은 저마다의 해답을 어디서 찾고 있을지 묻고 싶어졌다.

 

"다 같이 행복한 그날까지 나 꼴리는대로"

 

-9년차 다큐멘터리 감독 박배일

글 : 김세은 사진 : 김정훈

 

난생 처음 인터뷰 기사를 쓰게 되었다. 내가 맡은 인터뷰이가 독립영화 감독이라고 해서 당연히 극영화를 떠올렸는데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님이라고 한다.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생소했다.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까 궁금했다.

 

박배일 감독은 첫 작품 <그들만의 크리스마스(2007)>를 시작으로 <내 사랑 제제(2008)> <촛불은 미래다(2009)> <잔인한 계절(2010)> <강(江), 원래> <비엔호아(2011)> <나비와 바다(2011)> <밀양전(2012)> <밀양아리랑(2013)>등을 만들었다. 그가 몸 담고 있는 '오지필름'은 장애인, 노동자, 여성 등 소외된 계층이 자리한, 우리 사회의 '오지'를 조명하겠다는 이름에 걸맞는 작품들을 해 오고 있는 듯 했다.

 

 

Q. 독립영화 감독이 원래 꿈이셨나요?

A. 처음엔 방송국에 취직하려고 신방과로 진학했어요. 그래서 학과 방송학회에 가입했는데, 어쩌다보니 방송학회 사람들보다는 영화를 꾸꾸는 사람들이랑 더 어울려 놀게 됐어요. 같이 놀면서 영화를 하라는 꼬임도 많이 당하고요. 드라마 PD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드라마 비슷한 걸 만들어 보려면 단편영화를 찍어야겠다 생각했죠. 그래서 단편영화를 많이 보고, 만들어보고 그랬어요. 그런데 방송국은 심의 규정이 있어서 여러가지를 제약하더라고요. 담배도 못 나오게 하고, 노출도 못 하게 하고. <올인>이라는 드라마 알아요? 그 드라마에서 어느 순간부터 담배 피우는 장면을 모자이크 하는 거에요. 아마 그때부터 방송 심의 규정상 담배가 안 나왔을 거에요. 그런데 영화는 규제가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군대 전역하고 영화를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Q. 어떤 계기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셨나요?

A. 군대 다녀와서 학과 안에 브이랩(V-LAB)이라는 영상단체를 만들었어요. 기존에 영화를 만드는 학회가 있었지만 거기에는 들어가기 싫고 해서 만들었는데, 거기서 단편영화를 일 년에 10편 정도 찍었어요. 그 영화들을 영화제에 막 뿌렸어요. 그런데 한 편도 당선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니구나... 하고 방송국에 들어가려고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입학하고는 4년 동안 한 번도 공부를 안해봐지고 뭐부터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에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치고 시도라도 한 번 해보자' 해서 무작정 시나리오를 써서 교수님한테 갔어요. 그 때 썼던 시나리오가 모큐멘터리라고해서, 약간 섹스가 많이 들어간, 여성과 남성의 성에 대한 서로의 시각 차이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그 때 영화하는 교수한테 갔어야했는데 친한 교수님이 다큐멘터리를 하시는 분이라서 그 교수님한테 보여드렸거든요. 그 교수님이 "이런 쓸 데 없는 거 하지 말고 다큐멘터리를 해 봐라."하시더라고요. 당시에는 제가 지금처럼 저항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어서, 교수가 까라면 까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교수님 말씀대로 다큐멘터리를 해야겠다 결심했죠.

그 교수님이 다큐멘터리 소재를 찾으려면 미용실을 가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미용실에 가서 이 동네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파악한 다음, 동네 할머니들을 찾아갔어요. 할머니들이랑 이야길 나누다 보니까 제가 너무 모르는 게 많은 거예요. 그 때 '아 씨-. 세상이 내가 알던 세상만이 다가 아니구나'했죠. 제가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10년을 다니던 동네인데, 이렇게나 힘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실 거란 생각을 못했거든요. 항상 술 먹고 지나다니던 길인데 한 발짝만 더 떼고 그 동네를 살펴 보니까 거의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게 사는 거예요. 나도 가난하면서 가난이란 것을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가난한 사람, 가난한 삶,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서 그 때 처음 생각해 본 것 같아요. 그 이후로 방송국에 들어가지 않고 이런 분들의 삶을 담는 제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다시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어요. 카메라를 들어야 하는 이유를 찾은 거죠.

 

 

Q.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가져야할 사명감은 어떤 건가요?

A. 기본적으로 영화를 하는 사람은 사명감, 윤리 이런 것보다는 제일 우선시해야되는게 흥미, 재미 같아요.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처럼 누군가의 삶을 자기만의 스토리로 짜서 보여주는 거잖아요. 인터뷰를 하면서 사람을 마주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간에 대한 보편적 윤리를 가지고 있어야겠죠.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카메라 들고 그 사람에게 가는 일이 내게 재미가 있어야 돼요. 그 다음에 이분들을 어떻게 하면 세상에 잘 소개할까를 늘 생각하는데, 거기서부터 윤리와 책임감이 따르는 거 같아요. 결국에 감독은 누군가를 설득하는 사람인데, 가장 잘 설득하려면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하죠.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흥미롭고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중요해요. 윤리와 책임감은 마지막에 관객들이랑 만나기 전에 점검해야 할 덕목이죠. 말을 어렵게 해서 그런데, 결국에는 꼴리는대로 하는 게 제일 좋아요. 그렇게 하면 진심이 나와요. 자기도 재미없는데 책임감과 사명감으로만 이야기를 하면, 그때부터는 머리만 싸매게 되고 결과도 별로에요.

 

Q. 다큐멘터리감독의 하루는 어떤가요?

A. 작품 단계에 따라 늘 달라요. 지금은 다큐멘터리 하나를 마무리하고, 다른 하나를 다시 편집하는 단계인데 이럴 때는 그냥 모니터만 계~속 봐요.찍었던 영상 보면서 서치하고, 서치하고, 서치하고. 이런 거에요. 주로 오전 10시-11시에 출근해서 밤 10시-11시 퇴근해요. 그 사이에는 전부 다 서치, 서치,서치. 다음 단계는 새벽까지 계속 편집해요. 구성안을 짜면 거기에 맞게 계속 편집해요. 지난해 여름에는 밀양에서 편집을 했거든요. 9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까지 편집을 했어요. 그 사이에 뭐 밥 먹고 이런 것도 있긴 하지만, 계~속 편집만 하는 거에요. 그 후에 영화가 나오며 이런 인터뷰를 할 수도 있고, 사회를 한다거나 영화제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영화도 보는거죠. 촬영할때는 또 현장에서 촬영하고요. 하루가 작품의 어떤 단계냐에 따라 늘 다르죠.

 

Q. 작품 주제 선정은 어떻게 하세요?

A. 주제선정은 따로 안 해요. 다큐멘터리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잘 모르니까 배우러 다니고, 책 읽고 조사하고, 또 영화를 엄청 많이 봤어요. 영화의 전당에 가면 자료실이 있는데, 거기 있는 영화가 다 공짜에요! 부산영화제에서 틀었던 모든 작품이 공짜거든요. 거기서 1회부터 십 몇회까지의 한국영화를 다 봤어요. 그러면서 '아, 우리나라 독립 다큐멘터리는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네. 그럼 나는 어떤 주제를 다뤄야 하지?'를 고민했어요. 실제로 주제 선택은 어떤 순간에 자연스럽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번에는 여성에 대한 주제를 하자고 마음 먹어서 <나비와 바다>가 나온 게 아니고, 그냥 우영이 형이 전화로 "내일 프로포즈 한다. 부럽지?"하길래. '이 썅. 열 받아. 어? 그럼 형의 결혼 과정을 함 찍어볼까.'해서 찍었는데, 막상 지켜보니까 결혼 과정에서 여성이 받는 억압, 남자의 가부장적인 모습 이런 걸 좀 더 구체적으로 담게 된 거죠. <밀양전>,<밀양아리랑>도 어르신이 자살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욱 하는 순간에, 희망버스를 타고 가서 보고 또 욱. 그렇게 찍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선택했던 주제의 범위는 딱 세 개예요. 여성, 장애인, 노동자. 이 세 계층 사람들의 인권이 한국 사회에서 너무 보장받지 못하니까 나라도 적극적으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요.

 

 

Q. 감독님 작품 중에 사람들이 한 번쯤 꼭 봤으면 생각하는 작품이 있나요?

A. 다~봤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주려고요. 일단 지금 가장 많이 봤음 좋겠다싶은 영화는 얼마 전에 만들었던 <밀양 아리랑>이에요. 밀양 송전탑 싸움에 관한 이야긴데, 거기에 밀양에서 투쟁하시는 할머니들, 주민들의 삶이 나와요. 그런데 결국은 밀양 송전탑이 핵 발전소와 연결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송전탑이 어떤 거고 핵 발전소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 문제인지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요.

 

 

Q. 밀양 이야기는 <밀양전>,<밀양아리랑>까지만 하고 그만하시나요?

A. 밀양 분들이 말씀하시는 건 '예전으로 ,내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이거거든요. 주민들이 사는 곳에 거대한 송전탑이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도 없이 건설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그들(한전)이 하는 일은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거예요, 돈으로요. 이미 송전탑은 들어섰어요. 1월 쯤엔 전기를 보낼 거란 말이에요. 오랫동안 싸우면서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그럼에도 송전탑은 세워지고, 결국엔 이 사업에 설득을 당한 사람과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로 마을은 갈라져있는 상태에요. 그래서 투쟁이 끝난다는 의미는 몇 개 없는거 같아요. 집에서 나오면 송전탑이 보이고 그걸 보면 예전에 싸웠던 기억이 떠오를 테니까요. 마음 속에선 투쟁이 계속될 거에요. 그 송전탑이 뽑히진 않을 테니까. 그러면 앞으로는 또 다른 방식으로 마을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뤄야 될 텐데, 그런 과정을 쭉 지켜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투쟁이 끝난다? 그럼 끝날 때까지만 찍을까? 그런데 언제가 끝일까?를 생각해보면, 숙제처럼 길게 그 분들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Q. 이 일을 하면서 좌절과 시련의 순간이 있었나요?

A. <나비와 바다>제작에 2년이 걸렸거든요. 그 시간 동안 굉장히 많은 것들을 봐요. 주인공 우영이 형의 희로애락을 다 보는 거죠. 그걸 잘 담고 잘 편집해서 사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내가 이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난 너무 게으른데?', '내가 재주가 있나?' 뭐 이런 순간들이 가끔 오는 게 아니라 억수로 자주 와요. <나비와 바다> 첫 시사회 했을 때, 이 영화가 세상에 나와야 할 의미가 별로 없다고 느껴지는 거에요. 그래서 애들한테 그냥 '일단 제작지원 받았으니까 이 정도만 하자. 그냥 주고 끝내자.'고 했어요. 그런 순간들이 좌절의 순간들이었죠.

 

 

Q. 좌절의 순간에 다큐멘터리 감독이 된 걸 후회하셨나요?

A. 아니요. 보편적으로 봤을 때, 모든 일에 대입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보람있고 기쁜 것은 순간이라고 하잖아요. 그 순간으로 가는 과정은 늘 힘든거 같아요. 제가 장편을 5편 정도 하고 단편을 그것보다 2배 정도를 했는데 늘 할 때마다 모르겠어요. '아, 어떻게 했더라?', '어떻게 해야 되지?' 그 이유는 그 전에 했던 이야기가 지금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이야기마다 만드는 방식이나 길이가 다 다른 거에요. 그래서 늘 새롭고 매번 고통스러운데 이거를 하는 이유는 분명한 거고요. 그 고통이 어떤 기쁨의 순간으로 가는지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왔을 때, '이거도 다 어떤 것을 향해가는 과정이니까.' 그렇게 이해하면 뭐... 후회한 적은 없어요.

 

 

Q. 3년 전 인터뷰에서 '나에게 다큐멘터리는 세상을 변하게 하는 도구이다'라고 답 하신 거 기억하시죠?

A. 네, 여전해요.

 

 

Q.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변하게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지금껏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나요?

A. 없는 거 같은데...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당장 변화시킬 수 없는 걸 알아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내가 <밀양전>이라는 작품, <밀양아리랑>이라는 작품을 하면, '아, 이런 투쟁도 있었고 이런 삶도 있었고, 거기에 이런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하는 이야기들이 쌓여서 어떤 순간에 세상의 변화가 훅 오지 않을까? 나중에 그런 변화에 좋은 발판이 되는 정도가 돼도 상관 없겠다 싶은 거죠. 나의 영화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목표를 잡으면, 그 목표에 눌려서 이 일을 그만 둘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런 게 아니라 좋은 발판이 될수 있도록 좋은 상태의 이야기와 나의 마음들을 잘 담아서 쌓아놓자. 그러면 어느 순간, 뭐 제일 좋은 건 내가 살아있을 때 변화가 되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그런 게 쌓여있으면 자극이 돼서 변화의 순간이 훅 오지 않을까 싶어요.

 

 

Q. '아 이제 좀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었구나' 싶던 적이 있었나요?

A.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감독이라 생각해야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순간엔 늘 내가 다큐멘터리 감독이라고 마음먹어야 책임감이 필요한 상황에서 회피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이건 처음이니까', '고작 두 번째 작품이니까', '단편만 했으니까' 이게 변명이 되면, 누구의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요 정도만 하면 돼.'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겠죠? 그러면 내 영화에 나온 사람이 뭐가 되겠어요. 결론은 언젠가 다큐멘터리 감독이라고 생각하고 임해야 한다는 거죠. 여전히 모자라지만. 나의 상태 때문에, 나의 수준 때문에 변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 꿈이 있으시다면?

A. 행복하게 사는 거요. 불편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해요.사람이 제대로 살려면 불편해야 돼요. 편하다는 건 이기적이란 이야기거든요. 불편하게 산다고 반드시 이타적인 건 아니지만. 불편하다는 건 누군가를 신경쓰고 배려한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 누군가가 사람뿐만 아니라 나랑 관계 맺고 있는 나무일수도 있고 지구일 수도 있죠. 그러니까 다같이 어느 순간에 웃을 수 있는, 책임감과 대의에 눌리지 않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랑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태. 그런 상태를 즐기기에는 아직 내가 나를 너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저에게는 다같이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상태가 궁극적인 행복인 것 같아요.

 

 

Q.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하신다면요? 감독님이 하셨던 노력이라던가 마음가진 같은 걸 좀 가르쳐주세요.

A. 다큐멘터리를 하는 건 쉬운 게 아닌 거 같아요. 즐거움에는 늘 고통이 따라요. 고통의 순간이 있어야 즐거움의 순간이 더 간절해지고 극대화돼요. 힘든 걸 각오하고 그 과정들을 즐길 수 있는 그 순간까지는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큐멘터리 만드는 건 늘 힘들어요. 특히 첫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평가도 제대로 못 받을 거고 매번 좌절하게 돼죠. 그런데 그것들을 한 번에 끝내지 말고 그 힘든 과정들을 몇 번 더 해보면,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즐겁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다큐멘터리라는 매체를 따라오지 말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어떤 이야기로 관객과 만나고 싶은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

인터뷰 직전까지 질문지를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꿨다. 계속 불안했다. 과연 이런 질문으로 기사가 제대로 나올까 하는 걱정 때문에. 그런데 인터뷰를 마치고 보니, 웬걸.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건가. 부족한 내 질문에 핵심을 콕콕 짚어 답해주신 감독님 덕에 기분좋게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박배일 감독님은 처음엔 무뚝뚝한 인상이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미있는 모습도 간간히 보였고, 가난한 휴학생인 나를 대신하여 맛난 음료도 사주시는 따뜻한(?) 모습도 보여주셨다. 딱 '부산사나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감독님이 물었다. 꿈이 있냐고, 왜 그걸 하고 싶냐고. 왜 하고 싶냐는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지금와서 말하자면, '힘들어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 그거' 라고 대답하겠다. 감독님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을 함으로써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라고 하셨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 말을 항상 기억하고 또 생각해야겠다.

제목을 정하는데 고민이 많았다. 다 쓴 기사를 읽고 또 읽으며 뇌리에 박힌 두 단어, '욱'과 '꼴리는대로'였다. 내가 만나 본 감독님의 느낌을 잘 담고 있는 단어였다. 자신의 신념 안에서 '욱'하고 '꼴리는대로' 세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감독님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행복은 '모두가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했다. '다같이 행복한 그 날까지, 나 꼴리는대로.'

 

 

===============================================================================================================

 

 

 

청년 보통씨

 

***

청년보통씨는 미디토리 협동조합과 카페 나무가 함께 제작한 잡지입니다.

청년들의 진솔한 목소리가 담겨 있어요.

오지필름이 위치한 [미디어 공간 봄]에서 무료로 받아가실 수 있습니다.

 

 

 

+ Recent posts